16 - 내용증명 (1)

 유튜브로 엑셀 강의를 보던 어느 날, 사업지원팀이 시끌시끌하다. 마냥 무시할 수 없어 그도 이어폰을 빼고 들어보니, 어느 고객사가 정해진 수금일자를 몇 번이나 어겼다는 내용이다. 고객사의 사명에는 하얗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돈을 내지 않는다니 이름과 정반대로 까만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는 그다.

  S 팀장 : 하얀 녀석들 수금 됐어?

  T 과장 : 아직 안 됐습니다.

  S 팀장 : 원래 상환일자가 언제야?

  T 과장 : 원래는 2달 전에 줬어야 했는데, 상환기일 미뤄달라고 해놓고 이번에 또 안 넣어줬어요.

  S 팀장 : 담당 영업 누구야?

  T 과장 : ㅁ 대리입니다.

  S 팀장 : ㅁ아!

  ㅁ 대리 : (저 멀리서) 네!

 ㅁ 대리가 저 멀리서 달려온다. 하얀 고객사의 영업 담당자인가 보다.

  S 팀장 : ㅁ아. 얘네 하얀 녀석들 왜 돈을 안 내는 거야? 뭐하는 회사야?

  ㅁ 대리 : 스포츠 관련 회사인데, 지금 자금 사정이 안 좋아서 그런 것 같아요.

  S 팀장 : 연락은 돼?

  ㅁ 대리 : 저번 달까지는 됐었는데, 지금은 전화도 안 받아요.

  S 팀장 : 서비스 끊었나?

  T 과장 : 끊었습니다.

  S 팀장 : 내용증명 보내야겠다. 인감 신청 올려

  ㅁ 대리 : 네

  S 팀장 : T는 내용증명 문서 미리 작성해 놓고.

  T 과장 : 네

 (이때까지만 해도, 인감 신청은 영업이 하고 문서 작성만 사업지원이 맡았었다. 나중에는 인감 신청까지도 사업지원으로 넘어오게 된다)

  S 팀장 : (모니터를 보며) 아이, 이걸 내용증명이라고 쓰면 어떡해. ㅁ아!

  ㅁ 대리 : (저 멀리서) 네!

  S 팀장 : (바로 옆 T 과장에게) 이거 인감 신청하는 거는 시스템에 다 남는 거야. 요즘에 대표님이랑 다들 민감해서 이거 쭉 보신단 말야. 내용증명이라고 쓰면 안 돼. 내용증명이라고 하면 뭔가 큰일 난 것 같잖아

  T 과장 : 회수하고 다시 올리라고 하겠습니다.

  S 팀장 : 이런 직접적인 워딩은 안 좋아. '대금 지급 요청' 으로 다시 올리라고 해

  T 과장 : 네.

  그 : ...(그게 그거 아닌가 생각한다)

  T 과장 : 얼굴아

  그 : 네!

  T 과장 : 파일 보내줄 테니까, 이거 3부 출력해서 갖다 줘.

  그 : 네!

 T 과장은 그에게 '내용증명' ppt 파일을 보낸다. 읽어보니, 귀사가 당사에 돈을 안 줬으니 언제언제까지 얼마의 금액을 지급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내용이다. 3장을 출력하여 T 과장에게 전달한다. 그는 '내용증명'이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3부를 출력하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가 출력하여 전달한 서류를 훑어보고는, T 과장은 S 팀장 자리로 가서 인감을 찍겠다고 한다. 인감, 즉 도장이다. T 과장은 젠틀하면서도 절제된 몸놀림으로 도장에 인주를 묻힌 뒤, 내용증명 서류에 하나씩 찍는다. 서류 가장 아래쪽, 회사 대표 이름의 마지막 글자 위에 도장을 찍는다.

  S 팀장 : U야

  U 과장 : 네

  S 팀장 : 얼굴이 데리고 내용증명 송부하러 갔다 와

  U 과장 : 네

 U 과장은 황색 봉투에 고객사 이름과 주소를 적는다.

  그 : ... (멀뚱멀뚱)

  U 과장 : 봉투랑, 내용증명 3부 가지고 와.

  그 : 네!

 그는 U 과장을 따라 밖으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