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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Sep 29. 2023

17 - 내용증명 (2)

U 과장

 그는 이후에도 U 과장과 여러 차례 내용증명을 송부하러 우체국으로 향했다. 그가 파악한 U 과장은, 말을 걸기가 상당히 힘든 타입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U 과장이 입을 여는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법도 한데, U 과장은 핸드폰만 보며 말이 없다. 분위기가 날카롭지는 않았으나, 혼자만의 기운을 방해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이가 바로 U 과장이다.


 그런 U 과장이 유일하게 이야기를 할 때가 몇몇 있었으니, 바로 그에게 인수인계를 할 때다. 같이 일을 해야하고, 그러려면 일을 가르쳐야 하니, 좋든 싫든 그와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말을 걸기 껄끄럽지만, 막상 대화를 할 때마다 그는 U 과장이 상당히 세심하고 사려 깊은 부분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용증명 송부

  U 과장 : 가자.

  그 : (따라나선다)

  U 과장 : 우체국 어디 있는지 알아?

  그 : (네이버 지도를 켜며) 아뇨, 찾아보겠습니다.

  U 과장 : 15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데 있어. 내용증명 보내라고 하면 거기 가서 우편으로 보내면 돼.

  그 : 네. 그런데 이름이 왜 내용증명인가요?

  U 과장 : 말 그대로 내용증명, 나중에 법적인 절차까지 갈 때, 그 내용을 증명하는 서류라는 뜻이야.

  그 : 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U 과장 : ... 너 이거 3부 출력했잖아.

  그 : 네.

  U 과장 : 내용증명은 항상 3부 출력해. 하나는 우리가, 하나는 고객사, 하나는 우체국 거야. 우체국에서 공증을 해주겠다는 거지.

  그 : 아...!

  U 과장 : 그 말은, 하나는 도로 가져가서 보관을 해야 된다는 거야. 파일철 있으니까 들어가서 철해놔.

  그 : 네!


 말이 없는 U 과장도, 밖에 나오니 말문이 조금 트이는 느낌이다.


  그 : 내용증명을, 한 달에 몇 번쯤 보내나요?

  U 과장 : 글쎄.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 : 그때마다 우체국으로 가면 되는 거죠?

  U 과장 : 그래. 앞으로는 너가 보내도록 해.

  그 : 알겠습니다.

  U 과장 : (혼잣말처럼) 이걸... 아직까지도 이러고 매번 가서 보내야 된다니

  그 :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한다)

  U 과장 : 21세기에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 : 어... 중요한 문서라 그런 게 아닐까요?

  U 과장 : 다른 회사들은 이렇게 안 한다는데?

  그 : ...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 처리하나요?

  U 과장 : 우편물 관리하는 부서에서 일괄로 다 처리하지

  그 : ...


 그는 U 과장의 말을 들으며, 트랜스포머 영화가 생각난다. 주인공인 샘 윗위키가, 회사에 취업하고 처음 받았던 업무가 바로 사내 우편 담당자였다. 커다란 카트에 온갖 우편물과 소포(동그란 원통형도 있다)를 싣고 다니며, 회사 모든 부서의 우편물을 전달하고 송부할 우편물을 받아오는 장면이 있다. 지금 U 과장이 말하는 우편물 관리 부서는 바로 샘 윗위키가 했던 그런 업무를 뜻하는 것인가.



 우체국에 도착하여, 대기표를 뽑는다. 그는 U 과장 뒤에서 쭈뼛쭈뼛, 아무것도 못하는 병아리가 된 느낌이다. 우체국 직원은 우편물을 뒤로 가져가선, 도장을 찍고 스티커를 붙인다. 3부 중 하나는 봉투에 넣어 송부하고, 하나는 우체국이 갖고, 하나는 다시 돌려준다. U 과장은 법인카드를 꺼내 결제한다.


 돌아오는 길

  U 과장 : 어떻게 하는지 알았지? 다음부터는 혼자 와서 하면 돼

  그 : 아, 네.



 사무실에 돌아와, U 과장이 말한 대로 내용증명(보관용)을 파일에 철해서 보관한다. U 과장은 이후에도 몇 차례 더 그를 인솔하여 우체국에 다녀와주었으며, 그는 약 두달 뒤부터 혼자 내용증명을 송부하러 다닌다. U 과장의 말대로 불편하기도 하나, 그의 천성상 사무실을 나와 바깥공기를 마신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기분이 좋아진다.




 그가 향후 업무를 하며 파악한 내용증명 업무의 흐름은 아래와 같다. 내용증명은 기본적으로 '계약대로 돈을 내놔라' 라고 하는 문서이며, 내용증명만으로는 법적 효력이 없다. 법적 효력은 '지급 명령'에서 비로소 발효되는데, 이 지급 명령을 신청할 때 첨부해야 하는 증빙이 바로 내용증명이다.

 내용증명의 정의 상, 경기가 안 좋을수록 송부할 일이 잦아진다. 돈을 못 받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내용증명 : 수금 관련 법적 분쟁 시, 증빙으로 쓰이는 자료


서비스사 - 고객사 간 계약

  1) 서비스사 측 : 서비스 제공

  2) 고객사 측 : 서비스 사용, 대금 미지급

  3) 양사 간 협의 (수금 관련)

  4) 협의 결렬 -> 내용증명 송부

  5) 서비스사 측 : 내용증명 1차 송부 (대금지급 요청)

  6) 여전히 미수금

  7) 서비스사 측 : 내용증명 2차 송부 (대금지급 최고)

  8) 서비스사 측 : 지급명령 신청 (기송부한 내용증명 2부를 증빙으로 첨부)

  9) 고객사 측 : 서비스사가 제기한 지급명령에 대해 이의 신청 가능

  10) 이후 법적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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