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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Dec 25. 2023

23 - 지급명령 (1)

옛날 사람이 들어왔어

 그는 이제 갓 내용증명 업무에 발을 담갔다. 제대로 업무에 참여를 하고자 한다면, 고객사로부터 수금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알기 위해서는 결국 계약서에 어떻게 적혀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때의 그는 그런 것을 몰랐다. 아니, 아예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저 시키는대로, 과장이 전달해 준 내용증명을 우체국에 전달하기만 했을 뿐이다. 말 그대로 업무에 발만 담가놓은 신입이다.


 어느 날, 사업지원팀이 또다시 시끌시끌하다. 이때는 주로 채권 문제로 시끌시끌할 때가 많았다.


  S 팀장 : 아직도 수금 안 됐어?

  T 과장 : 네. 내용증명 보낸 이후로도 입금 확인이 안 됩니다.

  S 팀장: 거봐. 여기 서비스 그때 끊었지? 언제 끊었지?

  T 과장 : 0월 말일에 끊었습니다.

  S 팀장 : 다음 프로세스가 어떻게 되지? 지급명령 신청해야 할 거 아냐

  T 과장 : 네. 내용증명은 다 보냈으니까, 지급명령 신청하면 됩니다.

  S 팀장 : 어디서  하는거지? 법무에서 하나?

  T 과장 : 내용증명도 저희가 보냈으니까. 일단은 저희 측에서... ...

  S 팀장 : 그래, 이거 지급명령 들어가. 

  T 과장 : 알겠습니다.


 하는 일 없는 그는, 홀로 앉아서 귀만 세우고는 멀뚱멀뚱이다.



  U 과장 : 얼굴아

  그 : 네!

  U 과장 : 너가 저번에 보낸 내용증명 업체가, 아직도 돈을 안 줬어. 어떻게 해야겠어?

  그 : 모르겠습니다.

  U 과장 : 법원에다가, 돈을 내라고 판결을 내려달라고 해야지. 

  그 : 아...

  U 과장 : 인터넷 검색해서, 전자민원 들어가봐.

  그 : 네. (들어간다)

  U 과장 : 보자. 잠깐만. (팀 구석의 파일철이 쌓인 곳으로 간다)


 U 과장은 파일철을 하나 가지고 돌아온다. 파일철에는 매직으로 '내용증명' 이라고 적혀 있다.


  U 과장 : 이거 예전에 법무팀 ㅂ 형이 진행했던 거거든. 안에 보면 지급명령도 들어있어. 그거 보고서, 똑같이 증빙들을 준비해봐. 저번에는 ㅂ 형이 직접 법원 가서 진행했을 텐데, 이번에는 우리가 전자로 신청할 거야. 세상 좋아졌지.

  그 : 네.

  U 과장 : 내용증명 2부(요청, 최고)는 당연히 필요할 거고, 뭐 사업자등록증 같은 게 필요할걸. 증빙 다 되면 얘기해.

  그 : 알겠습니다.



 그는 파일철을 보며, 전자민원 사이트를 보며 증빙을 준비한다. 사업지원팀 전체가 시끌시끌해질 정도의 이슈였으니, 그는 마음이 조급해져서 빨리 처리하고자 한다. 하지만 아직 업무에 발만 살짝 담근 그의 업무 속도는 흉악할 정도로 느리다. 다행히도 해당 업무는 그다지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듯싶다.


 그는 경영학도이며, 자신의 전공인 경영학조차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다. 실제와 동떨어진 따분한 이론 위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가, '법'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졌을 리가 만무하다. 내용증명/지급명령 업무는 대표적인 '법무' 업무다. 자신의 업무가 어떤 것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 상태에서, 이것이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는 증빙인지, 어떠한 증빙을 갖추어야 하는지, 아니 애초에 그런 정보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그가 업무를 맡은 이 상황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 그가 회사원으로서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일 수도, 아니면 회사라는 곳은 원래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것일 수도. 그는 이후 대부분의 업무를 이런 식으로, 그닥 큰 차이가 없는 방식으로 배운다.


 

법인등기부등본

  그 : (제대로 하긴 했을까. 모르겠다) 다 됐습니다.

  U 과장 : 어디 보자.

  그 : ...

  U 과장 : 내용증명 2개. 사업자등록증. 법인등기부등본이 필요하네. 뽑았어?

  그 : 아.. 안 뽑았습니다.

  U 과장 : 인터넷등기소 들어가봐.

  그 : (따닥)

  U 과장 : 거기서 사업자 이름 검색하고, 열람 클릭... ...

  그 : (따닥, 따닥)

  U 과장 : 1,000원 내야 하네. 결제를... (핸드폰으로 결제 앱을 켠다)

  

 그는 나름 MZ 세대이긴 하지만, 아날로그 감성에 취해있는 편이다. 전자 기기를 못 다루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IT라서 인지 무엇인지 다들 핸드폰의 활용도가 높다. U과장은 그의 컴퓨터 화면에 떠 있는 QR 코드를 핸드폰으로 인식해서, 결제를 진행하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화면에 떠 있는 QR코드는 너무 작다. 그는 U 과장의 스캔이 용이하도록, 인터넷 화면 창을 최대화로 키운다. 그런데, 화면을 최대로 키워도 QR코드의 크기는 그대로다. 그가 전혀 모르고 있던 부분이다.


  U 과장 : (한눈에 그의 의도를 파악한 듯) 아니, 뭐 이렇게 옛날 사람이 들어왔어?

  그 : (상당히 민망하여) 아, 아닙니다...



 전자 결제 QR코드는, 창을 확대해도 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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