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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Nov 19. 2023

22 - 현장직 관리

중간 동네북

*그룹웨어 : 회사에서 업무를 위해 사용하는 시스템. 경영학 수업에서 그토록 예찬하던 ERP(Enterprise Resource Plan / 전사 자원 계획), MIS(Management Information System / 경영 정보 시스템)의 일종이거나 통합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경영학과 졸업생인 그는 수업 시간에 이러한 용어들을 많이 들었지만, 정확한 의미나 차이가 명료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각 회사가 업무 때 쓰는, 회사용 프로그램이라고 해석하기로 생각한 그다.


  

약 한 달이 지나갈 무렵, 옆자리 U 과장이 그에게 말한다.


  U 과장 : 얼굴아

  그 : 네!

  U 과장 : 너도 이제 들어온 지 한 달이 됐으니, 일을 해야겠지?

  그 : 네!

  U 과장 : (그의 자리에 의자를 끌고 와 앉고는) 그룹웨어 들어가 봐

  그 : (로그인한다)

  U 과장 : (그의 마우스로 이리저리 클릭하더니) ... 이게... 안 보이나?

  그 :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U 과장 : 아 아직 안 보이네. 기다려봐.

  그 : 네!

  U 과장 : 이미지 하나 보냈거든. 열어봐


 U 과장이 메신저를 통해 보낸 이미지는 어떤 문서의 양식이다. 무슨무슨 권한 요청서라고 되어있다.


  U 과장 : 그대로 작성해서, 기안하고 관리팀에 전화해.

  그 : 알겠습니다!



 그는 그룹웨어 여기저기를 눌러가며, 이미지에 나온 것과 똑같은 메뉴와 화면을 찾는다. U 과장이 속으로 시간을 세고 있지는 않을까. 괜히 마음이 급해져서 빠르게 찾으려 하나, 오히려 이런 종류의 것들은 마음이 급할수록 더 안 찾아지는 경향이 있다. 다행히도 U 과장은 실무가 바쁜지 자리로 돌아간 뒤로는 무관심한 듯하다. 거의 1시간 가까이 걸린 뒤에야 그는 이미지와 똑같은 화면을 찾아낸다.


  그 : (이미지대로 똑같이 입력하고는) 과장님, 이거 다 입력했습니다.

  U 과장 : (한번 훑어보더니) 오른쪽 위에 상신하기 버튼 있지? 그거 눌러봐

  그 : (클릭)

  U 과장 : 결재선은... 팀장님을 결재자로 해.

  그 : 네... 어.. (버벅댄다)

  U 과장 : 거기 결재자. 우리 팀 눌러. 더블 클릭. 팀장님 있지? 더블 클릭

  그 : (딱 따닥 따닥)

  U 과장 : 기안하기. 그렇지.

  그 : 네!


  U 과장 : (팀장에게) 팀장님, 얼굴 사원 그룹웨어 권한 기안드렸습니다. 결재 부탁드려요.

  S 팀장 : 그래~



  U 과장 : (결재 완료 후) 결재 됐지? 이제 전산팀 ㅎㅎ 과장님한테 전화해서, 권한 신청 기안드렸다고 해. 결재 이미 완료했다고.

  그 : ㅎㅎ 과장님 말씀이십니까. 알겠습니다.

  U 과장 : 권한 빨리 안 주면 올라가겠다고 해.

  그 : 아.. 알겠습니다.



 전산팀에서 그에게 권한을 부여하기까지는 일주일이 넘는 기간이 소요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U 과장 : 아직도 안 줬어? 뭐 이렇게 오래 걸려. 올라가서 뭐 하는 거냐고 해.

  그 : 네...



권한 부여 완료 후

  U 과장 : 자 보자... 됐네. 이제 그룹웨어 내에서 여러 가지 정보들을 볼 수 있게 된 거야. 틈날 때마다 보도록 하고.

  그 : 네!

  U 과장 : 이제 내가 일을 줄 건데. 여기 PMS를 들어가서. 보면 현장직 관리 탭이 있거든.

  그 : 네!

  U 과장 : 현장별로 검색하면 현장직원들이 나와. 현장별로 들어가서, 근태 입력을 할 거야. 보내준 파일들에서 현장 출퇴근 일지 열어보고, 출근한 날은 1, 출근 안 하는 날은 0으로 설정을... ...



 U 과장이 그에게 속성으로 알려주는 일은, 훗날 '현장직 관리'라고 불리게 된다. 그가 일하는 IT사업부에도, 고객사에 인력을 투입하여 무언가를 구축하거나 지원해주는 형태의 프로젝트가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정규직의 형태가 아닌 계약직으로 고용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을 '현장직'이라고 부르며, 그는 U 과장으로부터 이 현장직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넘겨받았다. 이후로 귀가 닳도록 듣게 되지만, 왜 이 일을 인사팀이 아닌 사업지원팀에서 하느냐는 질문이 많다. 그가 몸담은 절이 원래 예전부터 그래왔으며 앞으로도 변할 리는 없으니, 이 업무가 왜 여기서 이루어지느냐 하는 근본적 질문은 논외로 한다.

  

현장직 관리 업무

 - 현장에서 근무하는 현장직들의 채용-근태-급여-퇴직까지의 전반적인 인사 관리 업무를 통칭.

    1) 채용 : 기술팀에서 채용을 요청한 인원들을 채용

               - 인사팀에 이력서 제출, 근로계약과 관련된 행정 업무 전반 수행

    2) 근태 : 현장직원들의 근태를 직접 입력

               - 원칙적으로 근로일과 휴가일을 명확하게 입력해야 하나, 실제로는 평일/주말만 나누어 입력

    3) 급여 : 급여가 원활히 나갈 수 있도록, 필요한 시스템상/행정상 업무 처리

               - 근태 입력 오류 없이 진행

               -> 기술팀 팀장에게 근태 결재 요청

               -> 출력, 현장 직원들에게 해당 근태에 대한 자필 서명 요청 (스캔 가능)

               - 위 두 증빙을 근거로 인사팀에 급여 프로세스 요청

     4) 퇴직 : 퇴직 관련 행정, 서류 절차 진행

     5) 기타 문의/요청 사항 처리



 '현장직 관리' 라는 이 업무는 인사 업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채용-근태-급여-퇴직까지 모든 업무가 인사팀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좋게 이야기하자면, 그는 이 현장직 관리 업무를 통해 작게나마 인사 업무의 'Cycle'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봤다고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나쁘게 말하자면(더 사실에 가까운데), 그는  인사팀의 일을 떠넘겨 받았 뿐이다.


 처음의 그는 몰랐지만, 업무를 지속하면서 계속해서 그가 느낄 애로사항이 있다. 각종 서류/행정 업무는 그가 다 하는데, 일의 시작과 끝은 그가 관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현장직 채용에 관여할 수 없다. 그저 기술팀으로부터 요청이 오면, 해당 인원의 이력서를 정리해서 인사팀에 전달하고는 승인이 나길 기다릴 뿐이다. 승인이 나면, 이후의 서류 업무와 관리 업무를 진행하고, 또 매월 급여 승인이 나길 기다릴 뿐이다.


 인사팀의 승인이 늦어져 채용이나 급여가 늦어지면, 특히 급여가 늦어지게 되면 그때는 일이 커진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언제나, 책임은 중간에 껴 있는 그와 사업지원팀에게 전가되었다.



  - 기술팀 : 왜 채용이 아직까지도 안 되나요?

  - 중간 동네북 : 위에서 승인을 안 해줍니다

  - 기술팀 : 왜 승인을 안 해주죠? 이 사람 없으면 저희 PJT 진행이 안 돼요.

  - 중간 동네북 : 이야기해보겠습니다...


  - 인사팀 : 아니 또 채용을 해요?

  - 중간 동네북 :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 인사팀 : 이 사람이 왜 필요하고, 하는 일이 뭔데요?

  - 중간 동네북 : 확인해 보겠습니다.

  - 인사팀 : 프로젝트 계약서랑 계약금, 무슨 프로젝트인지 증빙 가져오세요. 그리고 이 인원 인건비가 제대로 책정이 된 건지, 동종 업계 임금 테이블도 증빙으로 첨부하세요.

  - 중간 동네북 : 네...


  - 기술팀 : 아, 저희 지금 급하게 프로젝트 내용이 변경돼서, 이 사람이 바로 투입이 돼야 합니다.

  - 중간 동네북 : 네? 언제부터 투입하셔야 하나요?

  - 기술팀 : 사실... 저번 달부터 일은 계속하고 있어요. 급여도 올려주는 걸로 이미 얘기가 끝났습니다.

  - 중간 동네북 : 그런데 이 분은, 저번 달에 퇴사하신다고 했던 분 아닌가요?

  - 기술팀 : 다른 프로젝트로 다시 고용하기로 했어요.

  - 중간 동네북 : ... 알겠습니다


  - 중간 동네북 : 해서, 이 사람이 필요합니다.

  - 인사팀 : 안 되죠. 일을 언제부터 했는데요? 그리고 급여를 올려달라고요?

  - 중간 동네북 : 여기 연봉 테이블이고... 중요한 인원이라고 합니다.

  - 인사팀 : 그럼 미리 내부 품의를 하고 기안지를 작성했어야죠. 여기 기안지 날짜 보세요. 이번 달이잖아요?

  - 중간 동네북 : (이번 달에 요청받았으니 당연히 이번 달에 썼다) 네...

  - 인사팀 : 기안지 날짜가 이번 달이니, 이건 승인 못해요. 저번달은 원래 급여대로 나간다고 하세요.

  - 중간 동네북 : ?? 아니 그럼...


  - 중간 동네북 : 그래서, 급여 인상을 한 달은 못해주겠다고 하네요.

  - 기술팀 : 하... 이거 이미 이 인원이랑 팀장님이랑 다 얘기가 된 건인데... 아니  왜 안된다는 거예요?

  - 중간 동네북 : 기안지 날짜가 늦었다고, 더 빨리 제출했어야 된다고 하네요.

  - 기술팀 : 그럼... 소급분 계산해서, 해당 금액만큼 다음번 급여 인상 때 그만큼 더 올리도록 하죠.

  - 중간 동네북 : 그렇게 되면 저쪽에서는 또 왜 그만큼 올리느냐고 근거를 요구할 겁니다.

  - 기술팀 : 그건 그때 가서 설명하도록 하죠. 우선은 근로계약 진행해주세요.

  - 중간 동네북 : 급여 인상분 1개월치 소급 안 되는 건은...

  - 기술팀 : 그건 저희도 말씀을 드릴테니, 근로계약하면서도 같이 안내해주세요.

  - 중간  동네북 : 네...




 현장직 관리 업무는 위와 같은 흐름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는 입사 전에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근로계약' 업무도 진행해보고, 메일 참조를 틀리게 설정하여 몇몇 현장직들의 급여 정보가 공유되는 조그마한 참사도 일으킨다. 그의 사과 메일에, 대부분의 현장직들은 괜찮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한 명의 현장직은, 자신의 급여가 동일 연차인 다른 현장직보다 높은 것이 오픈되어 버렸다며 난색을 표했다. 이미 오픈된 것을 어쩌겠는가. 그는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재차 사과 메일을 보냈다.


  현장직 관리 업무 관련해서는 재미난 일화가 몇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중간에 끼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고통을 웃음과 노동요로 승화하는 맛이 있다. 당시의 그는 깨닫지 못했지만, 현장직 관리 업무는 입사 직후의 그가 책임감을 느끼는 정말 몇 안 되는 업무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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