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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Oct 15. 2023

21 - 인원 현황 관리

 조직도, 말 그대로 조직을 그려놓은 그림이다. 회사에서 그림(보고)을 그리기 위해서는 내용(숫자)이 필요하다. 회사에서는 숫자를 가지고 보고를 한다. 즉, 숫자를 내용으로 하는 그림을 그려 보고를 하는 것이다. 최종 보고(그림)는 PPT로 하더라도, 내용인 숫자는 PPT로 관리하지 않는다. 숫자를 관리하는 양식은, 한국 직장인들에게 유명하고도 악명 높은 '엑셀' 파일이다. 그의 회사에서는 엑셀의 또다른 버전인 '구글 스프레드시트'도 함께 사용한다.


  S 팀장 : 얼굴아, 이거 내가 예전에 관리하던 인원 현황 시트인데, 이제 너가 도맡아서 관리해.

  그 : 네!

  S 팀장 : 권한 받았니?

  그 : 네, 받았습니다!



 팀장이 그에게 전달해 준 스프레드시트에는 IT 사업부의 재직/퇴직 현황이 빼곡히 기입되어 있다. 왼쪽 열에서 오른쪽으로, 이름 - 입사일 - 팀명 - 직급 - 특이사항 - 퇴직일... 등등이 계속해서 나열되어 있다. S 팀장은 어떠한 날짜 수식을 걸어서, 매월 말일자의 인원이 몇 명인지 위에 합계를 내어놓았다. 하지만 너무 오래되었고, 갱신이 제대로 되지 않아 합계는 많이 뒤틀려 있다.


 팀장에게 인사 시트를 넘겨받은 뒤, 그는 사업부 인사 책임자가 된다. 아니, 인사 책임자라기보다는, '인원 황 관리자'가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는 온갖 요구사항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처음 회사 생활을 시작하는, 입사한 지 몇 개월조차 되지 않은 그조차도 곧바로 깨달은 진실이 있다. 바로, '윗사람들은 관리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의 경험상, 위로 올라갈수록 더더욱 그랬다.



  사업부장 : S 팀장, 우리 조직도 업데이트 됐나?

  S 팀장 : 아 네. 얼굴아! 조직도 갱신본 인쇄해서 사업부장님 갖다드려라!

  그 : 네!


  그 : (A3 인쇄본을 들고 달려가) 여깄습니다 사업부장님!

  사업부장 : 어 그래. 여기 앉아봐.

  그 : 네!

  사업부장 : (펜을 들고) 보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누구지?

  그 : (그도 잘 모른다) 아 그... 여기, ㄱㄱㄱ 사원과 ㄴㄴㄴ 사원이 새로 들어왔습니다!

  사업부장 : ㄱㄱㄱ, ㄴㄴㄴ? 안 보이는데... 아 여기 있구나. 그래. 그리고...


 사업부장은 펜을 들고서 여기저기를 표시하고 코멘트를 달기 시작한다.


  사업부장 : 각 파트별로, 파트장 급이 있단 말야. 파트장들은 표시를 해줘. 여기 셀 색깔을 다르게 하던. 아니면 이름 색깔을 파랗게 하던?

  그 : 네!

  사업부장 : 그리고, 직급별로 몇 명인지 볼 수 있게 표 하나 만들어놔라. 종 모양으로. 뭔지 알지?

  그 : (뉴스에서 보는 나이별 종 모양 그래프를 떠올리며) 아, 네!

  사업부장 : 근데 여기 위에 있는 이 숫자는 뭐지?

  그 : 아, 해당 숫자는 총원입니다!

  사업부장 : 이 조직도, 앞으로 매월 출력해서 리더급한테 전부 갖다 줘라.

  그 : 네, 알겠습니다!


 이후 그는 조직도를 매달 출력하여 10여 명의 리더(팀장)들의 자리에 전달한다. 리더들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표면적으로는 다들 조직도에 심드렁한 눈치였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옛 말은, 대부분의 관리 업무에도 적용되는 듯하다. 사업부장은 인원 현황, 조직도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다. 그가 조직도/인원 현황 업무를 맡은 이래로 업무의 양과 복잡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한다. 추가 요구사항이 너무 많다 보니, 그가 처음 전달받았던 파일의 빈칸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다.


조직도

  1) 조직도에 직급별 인원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그래프 추가

  2) 총원 현황 추가

  3) 작년 기준 총원 변동 추가

  4) 파트장 식별할 수 있도록 구분 추가

  5) 매월 신규 입사자들은 사진을 볼 수 있도록 표를 추가하여 사진 삽입

  6) 임원, 정규직, 현장직, 파견직 인원 파악 도표 추가

  7) 2의 총원 현황에서 임원 수 제외

  8) 7의 총원 현황에서 외근직 제외

 

인원 현황 시트

  1) 현재 시점으로 모조리 갱신

  2) 임직원들의 평균 나이 추가

      - 생년월일 추가. (임직원 프로필 하나하나 클릭하여 열람 필요)

  3) 자격증 유무 추가

      - 자격증 유무 기록

  4) 퇴사자의 이직 회사 추가

      - 퇴사자 팀장 및 친했던 임직원에게 문의

  5) 임직원의 출신 학교 추가

      - 진행하다가 중간에 멈춤



 문제는 위의 사항들이 무작위로, 그것도 여러 번씩 요구되었다는 점이다. 요구사항 하나를 만족시키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이전에 요구받았던 기준이 이번에는 다시 원점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가 조직도를 출력하여 가져가면, 사업부장은 그를 옆에 앉혀두고는 펜을 들었다. 일개 신입사원이, 사업부의 장 옆에 앉아 개인과외를 받는 것은 아닌가. 그는 처음에는 나름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하고. 자신을 챙겨준다는 기분에 무한한 충성심이 생기려고까지 했었다. 하지만 수정사항은 끊이질 않았고, 그 또한 이 조직도 갱신이라는 업무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지 확신이 생기질 않았다. 종래에는, 출력해 간 조직도 위에서 춤을 추는 사업부장의 펜을 보며 그는 이러한 생각까지 들었다.


 어떻게든 수정사항을 만들어서 덧붙이려는 건 아닐지.


  - 얼굴아, 여기 조직도에, 직급별로 인원수 파악되게 추가 좀 해라

  - 작년에는 몇 명이었지? 작년에 비해서 얼마나 늘어났는지 볼 수 있게 해봐

  - 새로 들어온 애들은 여기에 따로 볼 수 있게 리스트를 만들어

  - 여기 리스트에, 사진도 추가해라

  - 우리 사업부 평균 나이가 몇 살이지? 그 인사 시트에, 평균 나이 볼 수 있게 해봐

  - 퇴사한 직원들이 이직을 어디로 했지? 그것도 기입해놔. 그건 나만 볼 수 있게

  - 직원들 대학교도 한번 추가해봐.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같은 대학교 인원이...

  - 우리 이번 년도 승진 대상자가 누구지? 그것도 기입을...



 이때의 그는 아직 몰랐지만, 사실 궁금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이러한 숱한 요구와 수정들이, 왜 그가 업무를 맡은 직후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것일까. 그전까지는 무엇을 한 것일까. 중요하지 않은 업무라서 묵혀두었던 것일까? 아니 중요한 업무임에도 이제 와서야 시작한 것일까? 그는 과연 중요한 업무를, 그 자신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수행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 애초에, 이런 업무는 인사팀에서 해야 되는 것 아닌가? (그의 회사에는 인사팀이 따로 있다)


 그의 사업지원팀 커리어가 슬금슬금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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