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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Dec 26. 2023

25 - W 사원 퇴사

파견직, 여직원 리스크를 헷지해라

 그가 합류한 사업지원팀은,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한 편이었다. 그를 제외한 모든 팀원들이 바빠보였고, 그래서인지 그를 챙겨주는 이는 없었다. 그는 낙동강 오리알처럼 쭈뼛쭈뼛 주변을 살핀다. 원래 신입사원이 다 이런 것이겠거니, 괜히 도와드릴 것이 없느냐고 액션을 취해본다. 그가 액션을 취하는 대상은 대부분 U 과장(바로 옆자리) 또는 V 차장(그의 뒷자리, 인상이 좋다)이었다. 


 그가 물어볼 때마다, U 과장과 V 차장 모두 괜찮다고 답했다. 너무 바빴거나, 귀찮았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에게 일일이 설명해 가면서까지 가르칠 여유는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또는 앞의 네 가지 이유가 모두 적절히 섞여 있었을 지도. 도와드릴 것이 없냐며 괜히 액션을 취한 그도, 도와줄 필요가 없다는 답변을 들을 때마다 은근히 다행이라고 여겼다. 신입으로써의 할 도리는 다 했다는 듯, 이것도 신입의 역할이라는 듯, 나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후련한 마음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는 썩 좋은 현상은 아니었다.



 그가 파악하기로는, 사업지원팀 모두가 바쁘지만 가장 바쁜 것은 바로 T 과장이었다. U 과장과 V 차장이 그 다음으로 바빴고, S 팀장은 신입사원인 그가 파악할 수 없는 범주다. 표면적으로 가장 덜 바쁜 인원은 바로 W 사원이다. 팀원 중 W 사원이 자리를 비우는 빈도가 가장 많다. 무엇 때문에 자리를 비웠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팀장을 비롯하여 사업지원팀원들은 W 사원에게 별다른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도 조직도를 담당하면서 점차 분위기를 파악하게 되는데, W 사원은 파견직(계약직)이다. 조직도를 보면 다른 직원들은 그냥 이름과 직급만 써있는데, W 사원을 비롯하여 몇몇은 직급 옆에 (파)라고 적혀 있다. 이런 식이다.

  'W 사원(파)'


 계약직의 계약은 통상 2년이며, 정규직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지만 실제 소속은 다른 회사다. 다른 회사 소속이 이곳에 '파견'되어 근무하는 것이다. 조직도 업무를 시작할 즈음, S 팀장이 이와 관련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학벌 및 입사를 위해 해온 노력이 다른데 같은 처우를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W 사원을 비롯한 파견직 사원들이 속한 회사는, 그를 비롯한 정규직들보다 급여가 낮은 것 같다.



 그도 계약직에 지원하여, 면접을 보고 최종 합격한 적이 있다. 면접을 주구장창 떨어지던 당시의 그는, 계약직이라도 입사를 해야하나 고민했었다. 여느 희망적인 드라마나 유튜버들의 말처럼, 일단 들어가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 계약직이던 무엇이던, 맡은 바 임무를 열심히 성실히 수행하면 위에서 반드시 알아주지 않겠는가. 열정과 노력을 알아주어,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주지 않겠는가. 빌어먹을 세상일지라도, 그런 미담은 언제나 있지 않나. 한없이 부정적인 그이지만, 이런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상상은 언제나 품고 있다. 하지만 해당 계약직에 최종 입사하지는 않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다행이다.


 보통 계약직의 계약은 2년이며, 1회까지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계약 연장이 이루어지기란 쉽지 않다. 계약직을 2년 이상 고용하면, 그 순간부터 회사가 계약직을 마음대로 해고할 수 없는 법이 있다고 한다. 일은 계속해서 시키면서, 임금은 낮게 주고 고용을 보장해주지 않는 횡포를 차단하기 위한 법이리라.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법보다 가까이 있고, 인간은 언제나 방법을 찾아낸다. 해당 법 조항의 제재를 받지 않기 위해, 2년이 되기 전에 계약직을 갈아치워버리는 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계약직을 보호하겠다는 규제가, 오히려 계약직의 수명을 단축해버리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기업 입장에서 보자면, 계약직을 굳이 정규직으로 전환해 줄 필요와 명분이 없다. 그가 다니는 회사의 계약직 업무는 대부분 '전표 처리, 비품 관리, 이외 비서 업무 등'에 한정되어 있다. 물론 회사에 꼭 필요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필요하다 뿐이지, 해당 업무의 난이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즉, 부가 가치가 낮다. 숙련된 계약직을 해고하고 초짜 신입을 채용하더라도, 실무 선에서 잠시 동안 삐걱거리는 잡음이 일 뿐 대체가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회사와 계약직은 서로에게 데면데면하다. 어차피 끝이 정해진 사이, 굳이 정을 줄 필요가 없다. 드라마나 유튜브에서나 볼 법한 미담은, 언제나 그렇듯 개뼉다구 같은 것이다(적어도 지금 이 회사에서는 그렇다). 개인의 노력으로 뒤집기에는, 고용 형태와 구조가 부여한 한계가 꽤나 명확하다.


 그래서인지, W 사원과 사업지원팀의 사이도 데면데면한 편이다. 직급이 위이긴 하나, 사업지원팀 상사들은 일적인 부분 외에는 W 사원을 터치하지 않는다. 점심도 따로 먹고, 할 일만 하면 그 외의 시간에 무엇을 하던 간섭을 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인간적인 스트레스가 없어 좋다고 할 수도, 어찌 보면 정이 없다고 할 수도. 



 그가 사업지원팀에 합류한 시점은, W 사원의 계약 만료가 다가오던 시기였다. T/U 과장은 W 사원이 없으면 당장 실무가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팀장의 답변으로 미루어보아 회사의 입장은 썩 긍정적이지 않았던 듯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W 사원 본인이 계약 연장을 원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다른 쪽으로 공부를 해볼 것이라며, 이것저것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그 : W 사원님, 혹시, 고향이 OOOO 쪽이세요?

  W 사원 : 오, 맞아요!

  그 : 아, 말씀하시는 게 그런 것 같아서요.

  W 사원 : 제가 사투리를 약간 쓰긴 해요.

  그 : 공부 준비 중이시라고 들었어요.

  W 사원 : 맞아요. 여기서 일해보니까, 회계는 저랑 진짜 안 맞는다는 걸 알게 돼서요.

  그 : 어떤 쪽으로 공부하시나요?

  W 사원 : 공대, IT 쪽으로 공부해 보려고요.

  그 : 아, 그럼 졸업하시고 나서 여기에 엔지니어로 들어오시면 되겠네요.

  W 사원 : 안 그래도 그 얘기 많이 들었어요. 공부해 봐야죠. 다시 들어오는 거야 뭐.


 W 사원의 뒤를 이을 후임자 면접은 이미 진행 중에 있었다. 후임자는 이내 결정되었고, W 사원은 일주일 간의 인수인계 후 후련한 표정으로 퇴사해 버린다. 그는 W 사원의 말 중, '회계는 자신과 정말 맞지 않는다' 라는 문구가 계속해서 귓가에 맴돈다.



 W 사원 퇴사 직후, 예상했듯 실무가 약간 삐걱인다. 전표 치는 여직원, 전표 치는 여직원 하지만 전표가 없으면 회사 실무가 굴러가지 않는가 보다. 삐걱거리는 사업지원팀을 보며, 사업부장이 했던 말을 그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사업부장 : 아니, 파견직 나갔다고 이렇게까지 된다고?

  T 과장 : 인수인계가 짧았고, 마감이 아닐 때 퇴사해서요.. (전표 업무는 마감 기간 때 바쁜 듯하다)

  사업부장 : 앞으로는 그, 얼굴이 있지 

  T 과장 : 네.

  사업부장 : 얼굴이한테, 여직원들 일도 가르쳐. 처음부터 다 가르쳐서, 다 할 줄 알게끔. 그렇게 해서 파견 여직원 리스크를 헷지하란 말야.



 귀를 세우고 사업부장의 말을 듣고 있던 그는 내심 기쁘다. 무엇이든 기본기가 탄탄해야하지 않겠는가. 기초부터 단단하게 쌓고 올라가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되지 않겠나.


 그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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