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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Dec 27. 2023

31 - 신규입사자 물품

수령, 불출, 컴맹

 그는 연초에 입사했으며, 같은 날 입사한 동기들이 여럿 있다. 그와 동기들은, U 과장에게 은혜를 입었었다.


  회사 단체방

  U 과장 : [공지] 사무집기 불출할 테니, 신규 입사자분들은 0층 창고 앞으로 지금 오세요.


 그와 입사 동기들은 공지를 읽자마자 안내된 창고로 향했다. U 과장은 이런저런 박스들을 뜯어, 안에서 온갖 집기와 용품들을 꺼내어 신입사원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U 과장 : 우선... 키보드마우스 하나씩 가져가고.

  신입사원 일동 : 감사합니다!

  U 과장 : 모니터는 2대씩.

  신입사원 일동 : 감사합니다!

  U 과장 : 일단은 그거 자리에 갖다놓고 다시 와요.

  신입사원 일동 : 네!


  U 과장 : 받침대가... 아 받침대가 여기 있구나.

 U 과장은 주머니에 있던 열쇠의 날 부분으로 박스 테이프 포장을 뜯는다. 손기술을 동정하는 그의 눈에는, 이러한 U 과장의 기술과 퍼포먼스가 멋져 보인다. 그는 이때 본 U 과장의 기술을 모방하여, 이후에 자신도 열쇠 날로 박스 포장을 뜯게 된다.


  U 과장 : 키보드마우스, 모니터, 받침대, 노트북 받침대... 다 받았죠? 이제 닫는다~



 이 회사에서 지급하는 사무 집기는 나름 훌륭한 편이다. 적어도 그에게는 그렇다. 왜냐면 그는 이때까지 생전 듀얼 모니터(모니터를 2개 연결하여 사용하는 것)라는 것을 써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입 사원에게 지급되는 물품은 다음과 같다.


  - 노트북 1대

  - 모니터 2개 (듀얼 모니터용)

  - 모니터 받침 1개

  - 노트북 받침(팬) 1개

  - 허브 1개 (유선 랜카드라고도 불린다. 모니터 2개의 선을 노트북과 연결시켜주는 역할)

  - 키보드-마우스 Set 1개

  - 이외 펜/포스트잇/수첩 등은 회사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을 자체 수급


 그의 경우, U 과장이 미리 준 키보드를 사용했다. 신입사원들에게 보급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모델로, 키보드를 노트북에 연결하면 구석에서 무지개 빛깔 같은 것이 맴돌았다. 그는 전자 기기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사용했다. 타자를 칠 때 감각과 찰칵 소리가 뭔가 찰진 것 같다는 느낌만 받았을 뿐이다. 나중에 그의 키보드를 본 입사 동기는, 이 키보드가 '기계식 키보드'라느니, '게이밍 키보드'라느니의 말을 했다. 자세히는 몰라도, U 과장은 그에게 좋은 키보드를 준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 신입사원은 어찌보면 정말 '애기'같은 존재다. 특히 그의 경우는 더 그랬는데, 그는 컴퓨터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듀얼모니터를 어떻게 연결해야하는 것인지, 컴퓨터 세팅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IP가 무엇인지, 프린터 연결은 어떻게 하는지, 노트북의 윈도우는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전무하다. 그의 IT 동기들은 다들 회사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알아서 척척 잘 진행을 한다.

  - 프린터가 잡히질 않는데, IP가 어떻게 되나요?

  - 연결은 됐는데 인쇄가 안되네요. 드라이버 어디서 다운받으면 되나요?

  - 이거 선이 없는 거 같은데, HDMI 포트가 있나요?

  - 저는 이 마우스 말고 제가 쓰는 마우스 있는데, 그걸 가져와도 되나요?

  - 노트북 사양이 어떻게 되나요?

 그의 입장에서는 외계어 같은 말들 뿐이다.


 컴퓨터 연결은 무지하지만, 그도 모니터 조립 자체는 할 수 있다. 연결해야 할 것 같은 것들을 연결하고, 나사 구멍이 있으면 나사를 끼워 조이면 되니까. 받침대 조립도 할 수 있다. 기술자들은 일반 사용자들을 위해서, 인간의 본성대로 따르면 조립할 수 있게끔 제품을 만들어 두었다. 겁먹어서 조립을 못할 뿐이지, 하고자 하면 다 할 수 있다.



 그의 경우, U 과장과 T 과장이 대부분의 PC 세팅을 해줬기 때문에 그다지 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다. 물품 불출, IP 관리, 노트북 윈도우즈 설치 등의 일이 그에게 넘어와버린 것이다.


 물품이야 불출하면 그만이다. 멋져 보였던 U 과장을 따라, 그도 열쇠로 박스 포장을 뜯으며 열심이다. 문제는 IP, 더 큰 문제는 바로 노트북 윈도우 설치다. 그를 제외한 사람들은, 학창 시절에 다들 컴퓨터 한 번쯤은 분해했다 조립해봤나 보다. 포맷도 해보고, 윈도우즈도 설치해봤나 보다. 그는 컴퓨터와 IT 부문에 있어서 온실 안 화초다.


 아무것도 없어 구동이 안 되는 노트북을 실행시키려면, 윈도우즈를 설치해야 한다. 노트북은 켜지질 않으니, 윈도우즈 설치 프로그램을 다운받은 USB를 노트북에 연결하고, 노트북 부팅을 USB를 통해 하면 된다고 한다. 지금에서야 이렇게 간단히 말하지만, 그가 이러한 논리와 순서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데만도 몇 달이 걸렸다. 새로운 노트북을 붙잡고 씨름할 때마다, 윈도우즈 설치에만 시간이 최소 2시간 가량이 날아갔다.



 나중에는 그가 PC 분해와 조립까지 손을 대게 되는데, 뭘 알고 손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얄팍한 지식, 괜히 손대지 않는 게 더 나을 정도의 수준. 일을 더 벌려놔서 결국은 다른 사람이 봐줘야 하는 지경을 만들곤 한다. 나아진 점도 있긴 하다. 컴퓨터라는 녀석에 대한 공포, 적어도 무지로 인한 공포는 사라졌다.

  - 아 예전에 이거 잘못 건드렸다가 쿠사리 먹었었지. 

  - 이거 말고 딴 거 조이고 풀고 하다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고 한 소리 들었었지.


 어찌 보면, 실력은 그대로인데 어설픈 자신감만 붙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컴맹'에 가까운 그의 대참사를 인내해 준 U 과장과 V 차장에게 감사할 뿐이다.



 어쨌든, 물품 불출부터 시작하여 신규 입사자 관련된 여러 내용들은 결국 그의 업무로 배정된다. 그 과정에서 '창고 재고 관리'라던지, 신규 입사자 불출 물품을 '수령하여 창고로 올리고 정리'하는 등의 업무도 그가 맡게 된다.


 이후 그는 모니터, 받침대, 이외 여럿 등을 구루마에 가득 실어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일을 자주 수행한다. 양이 많을 때는 오전 시간 전부를 할애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런 그를 보면 직원들은, 사업지원팀에서 이런 것까지 하냐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다른 이들의 관심과 애정은 감사하나, 그는 이 일이 좋다. 그의 천성에는 사무직보다 이 일이 더 맞다. 활동적이고, 움직임이 있고, 결과가 보이는 일. 예전 주방 알바를 할 때 식재료들을 싣고 오르락내리락하던 기억도 떠오르는 것이 친숙하다.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니, 첫 만남에서 그렇게 어색했던 '허브, HDMI 케이블' 같은 것들과도 이름뿐이나마 친숙해진다. 


 이후 U 과장은 주문한 물품이 도착할 때마다 그에게 수령을 지시한다. 그가 입사하기 전에는 U 과장이 해당 업무를 수행했으리라. 대리도 아니고, 과장급이 이걸 하는 게 맞나?  그의 개인적 선호 때문인지, 무엇이라도 배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U 과장을 향한 이유 없는 존경심과 예의였을지. 물품을 수령하고 창고로 옮기며, 전표 치는 업무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보람까지 느끼는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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