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카르마2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 얼굴 학생 Dec 27. 2023

32 - 웰컴키트 기획 보고서

  S 팀장 : 얼굴아

  그 : 네! (후다닥)


  S 팀장 : 얼굴아, 여기 앉아봐.

  그 : 네!

  S 팀장 : 우리도 이제 채용 공고도 계속 내고, 신입사원들이 계속 들어올 거거든.

  그 : 네!

  S 팀장 : 다른 IT 회사들 보면, '웰컴 키트'라고 해서 신입사원들 입사할 때 박스 같은 거에다가 필요한 물건들을 넣어가지고 줘.


 S 팀장은 모니터로 다른 이름 있는 회사들의 '웰컴 키트' 이미지를 스크롤하며 넘긴다. 인터넷에 올라온 홍보용 사진이라서인지, 다들 깔끔하고 좋아 보인다.


  그 : 오...

  S 팀장 : 너가 우리 사업부 인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너가, 다른 회사들의 웰컴 키트 구성품들을 참고해서 우리는 이런 식으로 만들자고 보고서를 써봐. 다른 데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여줘야 할 것이고. 현재 우리 상황이랑,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그 : 알겠습니다!

  S 팀장 : 홍보팀에서 물품 만들어놓은 것들도 있을 테니까, 그쪽이랑도 얘기해 보고

  그 : 네!



 업무 지시는 받았지만, 상당히 막막한 상태다. 그는 회사에 입사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으며, 기껏해야 전염병 전표만 치고 있는 상태다. 어떻게 해야 할지, 우선은 전달받은 파일 중에서 '보고서' 라는 이름 파일을 연다. 내용은 엉망일지라도, 회사 양식스럽다는 구색이라도 갖추기 위해서다.


웰컴 키트 보고서 (1차)

 1) 회사 보고서 양식 그대로 Ctrl C + Ctrl V (장표 양식, 표 양식 등)

 2) 팀장의 말 그대로 실행

     - 타사 사례 대표적인 것 선정, 이미지 및 내용 삽입

     - 웰컴 키트 기사 참고, 회사별로 담고자 하는 의미나 시행 시기 등 기입

     - 완성


 나름 완성된 보고서이지만, 그의 눈에도 '대학교 과제'스럽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는 T 과장에게 자문을 구한다.


  그 : 저, T 과장님, 안녕하세요.

  T 과장 : 어 그래 얼굴아, 무슨 일이야.

  그 : 팀장님께서 웰컴 키트 보고서 업무를 주셨는데,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요. 한 번 봐주실 수 있으십니까?

  T 과장 : 파일 보내봐.

  그 : 보내드렸습니다!

  T 과장 : 잘 만들었네. 그런데, 음. 내가 배운 보고서는, 보고하고자 하는 내용이 맨 처음에 나와야 해. 지금 보면, 타사 사례들이 잘 정리되어 있는데, 이걸 가지고 뭘 하겠다는 게 없잖아? 내가 배운 보고서는, 맨 첫 장에 하고자 하는 말을 간결하게 적고, 나머지 뒷장은 전부 첨부로 집어넣어.

  그 : 그러면, 제가 만든 이것도...

  T 과장 : 첨부지.

  그 : 다시 해보겠습니다!



웰컴 키트 보고서 (2차)

 1) T 과장의 말대로 맨 앞 장표 추가 (현재 상태 : 웰컴 키트 X -> 웰컴 키트가 필요하다)

 2) 뒷 장표 제목에 '첨부' 추가


  T 과장 : 나한테 묻는 것도 좋지만, 결국 시키신 것은 팀장님이시니까. 혼자 끌어안고 있지 말고, 일단 빨리 제출하고 피드백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그 : 알겠습니다!



  그 : 팀장님, 웰컴 키트 보고서 제출드렸습니다.

  S 팀장 : 그래~


 약 15분 후

  S 팀장 : 얼굴아

  그 : 네!

  S 팀장 : 잠깐 와봐.

  그 : 네!

  S 팀장 : 보자. 처음 만든 거니까. 한 번 짚어줄게. 나도 원래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난 이렇게 배웠었어. 보면, 일단 우리 회사 보고서는 글씨체가 12포인트야.

  그 : 네.

  S 팀장 : 글씨체는 맑은 고딕으로 하고. 화면 크기는 이렇게. 이게 우리 회사의 양식이라고 보면 돼.

  그 : 네.

  S 팀장 : 처음에, 이러이러해서 지금은 없는데 웰컴 키트가 필요하다~ 그래서 뒤에는 이렇다고 너가 해놓은 거지? 근데, 지금 첨부가 너무 많아. 다른 회사들 사진들을 이렇게 첨부를 해놓았는데. 그럼 이걸 내가 일일이 다 봐야된다는 소리잖아? 임원들도 그렇고, 위로 갈수록 바쁜 사람들이야. 보고서 올리면 첫 페이지에 제목, 주요 내용만 보는 데 얼마나 쓸 거 같아?

  그 : 어...

  S 팀장 : 30초도 안 걸려. 지금 너가 만든 거는, 내가 뒤에 첨부를 다 넘기면서 봐야해. 그래 사진은 좋다 이거야. 타사 키트 사진들은 뒤에 첨부로 하고, 그거를 너가 표로 정리한 장표를 하나 더 만들어서 넣던지.

  그 : 알겠습니다!

  S 팀장 : 이 사진도, 이게 어떤 물품인지가 확실치가 않아. 사진에다가 뭐 도형이나 글상자 넣어가지고, 이건 펜입니다. 이건 다이어리입니다 이런 식으로 해줘도 좋고. 근데 IT나 게임업계는 어떻지? 그것도 하나 넣어라.

  그 : 알겠습니다!

  S 팀장 : 그래~



웰컴 키트 보고서 (3차)

  1) 타사 웰컴키트 구성 물품을 정리한 도표 추가

  2) 첨부의 타사 웰컴키트 사진에 어떤 물품인지 설명 추가

  3) IT/게임업계 사례 추가

  4) 신문 기사 발췌, 타 회사의 '웰컴키트 제작 시 주의사항' 추가


  그 : (제출해도 되나 모르겠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됐다) 팀장님... 제출드렸습니다.

  S 팀장 : 그래~



 그의 보고서가 인정을 받은 것인지, 중간 검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인지, 놀랍게도 그가 만든 웰컴키트 기획 보고서는 날 것 그대로 출력되어 사업부장에게까지 제출되기에 이른다. 입사하고 2달도 되지 않아 만든, 그것도 첫 보고서를 사업부장이 보게 되다니. 그는 웰컴 키트 업무가 이렇게까지 큰 업무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만일 이를 미리 알았더라면 부담감에 짓눌려 아예 업무가 진행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입사 초창기에 만든 첫 보고서이기에, 애정은 있지만 내용은 썩 좋지 않을 것이라고 기억하고 있던 그다.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보니, 적어도 그의 감상에는 나쁘지 않다. 신입 특유의 순수함과 담백한 느낌이 있는 보고서다.




매거진의 이전글 31 - 신규입사자 물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