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 굿바이 키트
Goodbye, Farewell
보고서와 조사를 바탕으로, 그가 추천한 웰컴키트 구성 품목은 아래와 같다.
- 회사 메뉴얼북 (생활백서 등)
- 사원증
- 노트
- 펜
- 다이어리
- USB (입사 동기 추천 품목)
- 슬리퍼 (동종 업계 지급품)
- 칫솔/치약
- 텀블러
- 기타
그의 웰컴키트 보고서는 사업부장을 포함하여 홍보팀에도 공유가 되었다. 그의 보고서를 시작으로 하여, 사업지원팀(그)과 홍보팀이 웰컴키트 제작 구상에 착수하기 시작한다. 홍보팀 매니저는 그의 보고서 마지막 장의 '주의사항'을 보며 웃는다.
홍보팀 매니저 : 무료 판촉물 느낌이 나지 않을 것...
그의 회사는 홍보 부분이 상당히 약하다. 애초에 B2B 사업을 영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매출 규모에 비해 대외 홍보에 그다지 많은 투자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홍보팀 인원이 적었으며, 홍보팀 팀장이 이에 대해 항상 젠틀하게 의견을 피력하곤 했다.
사업부장 : 홍보팀이랑, 사업지원팀이랑 같이 웰컴 키트 한번 구상해 봐.
홍보팀 팀장 : 네. 이게 웰컴 키트라는 것이, 단순히 신입사원들한테 물품을 준다기보다는, 넓은 의미에서는 회사 광고이고 이미지 메이킹이에요. 잘만 만들면 매스컴에도 노출이 되고요. 보고서 보시면, 티O도 원래는 정말 물품이 중구난방이었는데 이걸 재구성해서 키트로 승화시킨 케이스거든요. 마케팅에서는 유명한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어요. 저희도 이참에, 키트 한번 구성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업부장 : 그래, 이 참에 우리도 웰컴 키트를 만들어서 정착을 시키자고.
홍보팀 팀장 : 네, 요즘에는, 웰컴 키트부터 시작해서 새로 합류하는 직원들이 잘 정착할 수 있게끔 하는 프로세스를 온보딩이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웰컴 키트도 색상이랑 디자인을 통일시키고, 무엇보다 한 날 한시에 주는 게 중요해요. 한 달에 한 번씩 사업부 미팅을 할 때 사업부장님께서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업부장 : 그렇긴 한데, 물품 중에 줄 수 없는 게 있을 텐데. 사원증이랑 회사 다이어리 우리가 주나?
홍보팀 매니저 : 사원증이랑 다이어리는 인사팀에서 줍니다.
사업부장 : 그럼 그거는 인사랑도 이야기가 돼야 할 거 같은데. 사원증이 얼마나 걸리지?
홍보팀 매니저 : 입사 이후부터 제작을 시작해서, 웰컴 키트랑 같이 주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S 팀장 : 사실 저는 이 사원증도, 너무 디자인이 오래되지 않았어요?
홍보팀 팀장 : 맞아요. 사원증도 리뉴얼이 필요해요.
사업부장 : 사업지원팀이랑 홍보팀이 한번 진행해 봐.
사업부장과 함께 이야기를 할 때는 무엇이든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신입사원인 그도 덩달아 신이 나서, 이 회사의 웰컴 키트 도입에 그가 큰 일조를 하는 것이 아닌가 들뜬다. 물론 이는 큰 착각이었다.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던 웰컴 키트도, 비용 이야기가 나오면서 조금씩 산으로 가기 시작한다.
홍보팀 팀장 : 사업부장님, 이번에 저희가 업체 통해서 견적을 뽑아봤습니다. 3개 업체 통해서 견적을 받았는데요, 포장 박스부터 시작해서 안에는 텀블러 등의 물품을 넣을 수 있도록 주문 제작으로 했습니다. 비용은 약... ...
사업부장 : 비용이 그 정도라고? 생각보다 꽤 나가네.
S 팀장 : 지금 갖고 있는 것 중에 박스를 대체할 게 있나요?
홍보팀 팀장 : 행사 때 불출하려고 제작한 에코백이 있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박스로 주는 것이...
사업부장 : 안에 물품 구성은 어떻게 되지?
홍보팀 팀장 :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 저희가 갖고 있는 물품들은 웰컴 키트에 적합하지 않아요. 웰컴 키트 물품이라기보다는, 그냥 있는 거를 웰컴 키트라고 이야기하면서 주는 거니까요. 원래대로면 펜이나 다이어리, 포스트잇 이런 것들에도 회사 로고 프린팅을 하고, 포장도 일관되게 해서 해야 의미가 있습니다.
사업부장 : 그건 우선은, 있는 물건들로 진행을 해야지
홍보팀 팀장 : ...
S 팀장 : 우선은 있는 물건들로 하고, 조금씩 더 개선해 가는 걸로 하죠. 그리고 온보딩 교육도, 우선 프로세스는 이런 식으로 짜보았는데요...
이 미팅 이후부터, 홍보팀에서는 팀장이 아니라 매니저가 웰컴 키트 업무를 주로 진행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도 S 팀장에게 물품 관련하여 의견을 이야기했으나, 모두 튕겨져 나갔다.
그 : 팀장님, 슬리퍼를 지급하는 건 어떨까요? 여러 회사들이 지급한다고 합니다.
S 팀장 : 우리 회사가, 우리 층은 괜찮은데, 아직은 슬리퍼를 권장하는 문화가 아니야. 굳이 넣을 필요는 없지.
그 : 치약/칫솔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S 팀장 : 치약/칫솔은, 웰컴 키트 물품이라고 하기엔 목적이 안 맞지 않나?
그 : 텀블러도...
S 팀장 : 텀블러도, 제작을 하던지 해야할텐데 그렇게 되면... ...
구상할 때는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았으나, 실제 구현 단계에서 비용이라는 제약이 생기면서 팀별 이해관계가 부딪힌다.
홍보팀 : 웰컴 키트를 제대로 도입해서 조직 몰입도도 높이고, 회사 홍보도 확실히 하자.
사업지원, 사업부장 : 최소의 비용으로 효과를 내자. 있는 물품을 최대한 활용해라
결국은 사업부장과 사업지원 측의 의견이 이긴다. 홍보팀에서 제안했던 주문 제작, 로고 프린팅 등의 아이디어는 모조리 삭제되고, 기존에 있던 물품만 재활용하여 에코백에 담는 것으로 결정이 난다. 사업부장의 지시로, 새롭게 도입하려는 웰컴키트 샘플을 만든다. 샘플을 들고 가는 도중 그와 홍보팀 팀장의 눈이 마주친다. 홍보팀 팀장이 그에게 오라고 손짓한다.
홍보팀 팀장 : (속삭이듯) 이게, 이게 웰컴키트니? 그냥 있는 거 다 담아가지고 주는 거지. 이거는 웰컴키트라고 부를 수조차 없어. 솔직히 나 같으면 입사해서 이거 받으면, 이게 뭐지? 싶을걸
그 : (당황하지만 동의하며) 그... 그렇습니다.
홍보팀 팀장 : (다시 웃음을 되찾으며) 아냐, 됐어. 가져가봐.
홍보팀 팀장은 여러 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진행한 경험이 있으며, 향후 그에게 꽤 큰 영향을 끼친다. 이야기하는 말투 자체가 나긋나긋하면서도, 동시에 목적성이 분명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런 홍보팀 팀장의 영향 탓인지, 그의 눈에도 웰컴키트가 허술해 보인다.
그는 속으로, 이 웰컴키트를 '굿바이 키트'라고 생각한다. 이 키트를 보고, 어서 빨리 도망치라는 굿바이 키트, 혹은 Farewell 키트. 하지만 이 웰컴키트조차도 못 받은 기존 직원들 중에서는, 자신도 하나 가져다 달라고 하는 인원도 있었다. 또한 이후의 신규 입사자들은, 가면을 쓴 것일 수도 있으나, 그가 웰컴 키트를 가져가면 언제나 감사하다고 말하며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