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점 인생에 익숙해지기
‘0과 1로만 이루어진 세상에 사는 사람’
세상은 정수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세상은 정수 사이의 무한대의 소수점으로 존재한다. 0과 1 사이의 0.1, 0.5 같은 세상은 나에게 항상 어려운 세상이었다. 심지어 처음에는 소수점 세계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흑백논리처럼 좋거나 싫어야 하며, 내편이거나 남의 편이어야 하며, 나를 사랑하던지, 안 사랑하던지 해야 했다.
예를 들어서, 연애를 시작할 때의 감정은 상대방에 대한 호감에서 시작될 수 있다.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상대방의 어떤 점은 사랑할 수 있지만, 다른 점은 사랑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직 마음을 키워가는 중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렇게 행동해야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기준이 있어서, 그 기준에 맞지 않을 경우 “넌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너 나를 사랑하는 것 맞아?”라고 말하고는 했다.
하지만 0과 1 사이에는 무수한 소수가 있다. 그리고 또한 그 숫자는 고정적이지도 않다. 오늘은 0.3이다 내일은 0.6일 수도 있다. ‘극단적이다. 호불호가 강하다’는 말을 듣고 자란 나는 30대가 되어서야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너는 내 편이지?’
나는 친구나 연인, 가족들에게 자주 ‘내편이 맞지? 나랑 친한 거 맞지?’라고 물어보고는 했다. 어느 날 남자 친구가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이 내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돌이켜보니 나에게 그 누구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상대방의 마음이 중요한 사람이고,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나는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겁이 많은 사람인 것이다. 그러기에 마음을 주거나 어떠한 행동을 하기 전에 상대방으로부터의 확답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네 편이라고.
‘소수점 세상은 불편해.’
‘널 좋아하고 있어. 마음을 키워 나가는 중이야.’ 같은 말은 나에게 애매한 말로 들렸고, 불신과 불안감을 가져왔다. 나는 과정을 기다리지 못했으며, 명확한 결과를 먼저 원했다. 나의 조바심과 참을성이 부족한 성격은 어쩌면 살아오는 동안 많은 기회를 놓치게 했는지도 모른다. 혼자 지레짐작하고 혼자 상상하고 혼자 결론 내리며,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나의 세상은 왜 0과 1로만 이루어져 있었을까. 나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며, 남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살 것이라고 단정 짓곤 했다. 또한 애매한 시간을 견디고 나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까 겁먹고 먼저 알아서 결과를 내버리는 것 같기도 같다. 나에게 선택권이 없는 상황이 내게는 매우 불안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성격은 상황을 회피하게 만들었다. 회피하는 성향은 이제 나의 일상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사람들 사이의 갈등, 귀찮은 일 등을 회피하고 싶어서 일을 미루거나, 사람에게서 도망가거나 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라며 스스로를 속이고는 했다.
‘일기조차 나를 속이며 쓴다’
날 것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게는 용기를 갖는 것의 첫걸음이다.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기술하고, 평소에 생각하고 고민하던 것들에 대해 정리해보며, 스스로의 장단점을 있는 그대로 인식해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기를 쓸 때조차 약간의 과장이나 꾸밈을 더한다고 했다. 자신만의 기록인데도 누가 볼까 싶어 숨어드는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고 싶다. 며칠 써본 결과, 글을 쓰면 마음이 편해진다.
진솔한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것,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기 위한 방법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