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왔어"

재미있는 상상으로 순간을 아름답게 보내기

by 포도나무

아들 머리 깎는 단골 미용실은 우리동네 블루클럽이다. 어렸을 때 부터 아이들을 주~ 욱 데리고 동네 산책하듯이 블루클럽엘 갔다. 블루클럽 주인 아저씨는 친절하고 감성적이신 분이다. 고양이를 무척이나 좋아하셔서 블루클럽 앞에 고양이 사료그릇을 늘 놓아두신다. 그러면 아는 고양이들은 늘 아저씨의 블루클럽에 와서 배를 채우곤 한다.

오랜만에 들른 미용실에 고양이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끈에 묶여있는 것이 아닌가. 이유를 물었더니 눈이 보이지 않는단다. 미용실 안에서 여기저기 다니며 다칠 수 있어 묶어놓으셨다고 한다. 너무 애처럽고 불쌍한 고양이...


아저씨는 미용실로 밥 먹으러 오는 고양이를 "왔어"라고 부르셨다. 그래서 이름이 '왔어'가 되었다. 고양이는 남자친구도 있었다고 한다. (남편인지는 모르겠다.) 어느날 임신을 했고 어디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새끼들도 몇 마리 낳았다고 한다. 새끼들을 보러 왔다갔다 했는지 불행하게도 길을 건너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사고당한 '왔어'를 데리고 아저씨는 병원에 가셨다. 몇 차례 수술을 해야 했고 입원기간도 길어질 거라고 했다. 감당하기에 비싼 병원비에 아저씨는 수술을 망설이셨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병원 원장님은 본인이 수술을 시켜줄테니 돌보는건 아저씨가 해주시면 좋겠다고 하셨다.

아저씨는 이 이야기를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수술을 망설인 자신이 너무 부끄러우시다면서...그리고 병원원장님께 감사하시다면서. 연세있으신 분이 내 앞에서 고양이때문에 우는데... 나도 안 울 수 가 없었다. 우리는 고양이 이야기 하며 사각사각 머리 깎는 소리를 들으며 같이 울었다.

고양이 '왔어'는 잘 회복되었지만 사고 이후로 볼 수는 없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볼 수는 없어도 다가가면 알아채고 핥아주곤 한다. 고양이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은 한참동안 고양이 '왔어'와 그렇게 놀아준다.


고양이는 햇볕좋은 날에는 밖에 나와 앉아있기도 하고, 아저씨 말로는 남자친구도 가끔씩 찾아온단다. (조금 떨어진 곳에 남자친구가 새로운 여자친구와 살고 있다는 소식도 작은 소리로 귀뜸해주셨다.)


머리를 깎고 거스름 돈은 늘 고양이 '왔어' 맛있는 캔 사주라고 그냥 드리고 온다. '왔어'를 향한 작은 마음의 표현으로. 한동안 고양이 '왔어'는 나에게 깊은 사색을 안겨주었다. 고양이는 눈을 뜨면 무엇이 가장 보고 싶을까.


고마운 아저씨의 얼굴

자기가 낳은 새끼들

미용실에 오는, 자기를 쓰다듬어 주는 손님들

미워도 다시한번 남자친구 고양이?


나는 매일매일 무엇을 눈에 담으며 살고 있을까.

헬렌켈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에서 그녀가 나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내일 갑자기 장님이 될 사람처럼 여러분의 눈을 사용하십시오. 다른 감각기관도 똑같은 방법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내일 귀가 안 들리는 사람처럼 음악 소리와 새의 지저귐과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연주를 들어보십시오. 내일이면 촉각이 모두 마비될 사람처럼 그렇게 만지고 싶은 것들을 만지십시오. 내일이면 후각도 미각도 잃을 사람처럼 꽃 향기를 맡고, 맛있는 음식을 음미해보십시오. 모든 감각을 최대한 활용하세요. 자연이 제공한 여러 가지 접촉방법을 통해 세상이 당신에게 주는 모든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영광을 돌리세요.


-내가 만일 사흘동안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면 39P -


긴 긴 방학동안 지지고 볶으며 지내는 시간들이 위로가 되고 감사가 된다. 아이고 시끄러워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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