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상상으로 순간을 아름답게 보내기
어렸을때 우리집은 여러종류의 애완동물을 키웠다. 하얀 토끼 두마리, 강아지, 다람쥐, 거북이, 새, 기른 시기는 모두 달랐지만 자라면서 여러 동물을 만나고 교감할 수 있었다.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토끼똥을 치우고, 다람쥐에게 맛있는 해바라기씨를 주고, 거북이 어항을 청소했다. 살피고 돌보는 과정은 마음이 자라는 시간이다. 더불어 성장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늘 동물들과의 헤어짐의 시간을 맞아야만 했다.
죽음이라는 슬픈 감정을 처음 느꼈던 건 거북이를 키울때였다. 거북이를 꺼내 어항을 청소하고 물을 갈아준다. 손바닥에 거북이를 올려놓으면 네 발을 휘저으며 어찌나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지... 세상의 살아있는 온 힘을 거북이에게서 느꼈었다. 그런 거북이가 어느날 갑자기 축 늘어진채로 죽음을 맞이했다. 거북이의 죽음은 세상이 죽은것 같은 슬픔이었다.
지금와서 보니 쉽지 않았던 애완동물 키우기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 부모님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 나는 지금 세 아이들에게 그러한 기회를 주고 있지 못해서다. 이건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한 부분이다. 세 아이를 키우는 것 만으로도 바쁘기도 하고, 가족 구성원의 한사람(아이들과 나 제외)이 유난히 애완동물 키우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다. 생명을 들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며 강경하게 반대를 한다. (구피나 소라게 등의 작은 동물들은 키워본 경험은 있음) 아무래도 당분간은 우리집에서 애완동물 키우기는 어려울 듯 싶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집에 애완돌이 찾아왔다.
아이들과 읽게 된 재미있는 책 속의 주인공도 애완동물을 간절히 키우고 싶어한다. 그러던 어느날 부모님이 선물해주신 애완돌! 아이는 처음에는 아무 반응이 없는 돌에 대해 실망하지만 이내 마음을 쏟는다. 돌과 산책을 하고 이름을 지어주고, 정성을 다한다. 우리 아이들도 작은 애완돌을 하나씩 받았다. 이름을 지어주고 작은 소리로 속삭이며 이야기를 나눈다. 깨끗이 씻어 로션도 발라주고 아끼고 사랑해 준다.
(얘들아 미안하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
즐거운 돌봄은 며칠이어졌다.
애완돌의 이름은 떡이다. 이름을 불러주니 의미가 생긴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내가 키웠던 애완동물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마음을 나누었던 시간의 감정은 지금도 느껴진다. 내가 받았던 유년시절의 모든 기회와 경험. 부모님의 사랑은 또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흘러간다. 아니 흘려보내려고 나는 오늘도 하루를 열심히 산다.
우리 아이들도 지금은 투덜대고 부족하다 여기겠지만 좀 크면 부모를 좀 이해해주려나 고맙다 여겨 주려나.
내가 키우는 우리 아이들에게 오늘도 마음을 다했나 정성을 다했나 또 하루를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