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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고양이 Feb 05. 2024

가족의 재구성

이별 그리고 추억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과 충격으로 다가온 이별은 친정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이다.


시도 때도 없이 통화하고 시답잖은 수다에 허접한 다툼까지...

일산 신도시로 분양받아 서울을 떠나오기까지 우리는 서로의 존재가 중요하냐 아니냐에 고민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저 한없이 그렇게 살아질것이라 느꼈기 때문에...


그러나 인지하지 못했던 죽음의 정령은 보잘것없이 하대했던 엄마의 위 속에서 소리 없이 힘을 키우고 있었다.

엄마는 바쁜 하루 중 단 한 번도 그것을 위한 배려는 없었다. 서둘러 식사를 하느라 밥을 말아먹었고 우걱우걱 대충 삼켰다. 구취가 나고 꺽꺽 트림을 하며 티를 팍팍 내었건어느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단단하고 바지런했던 작은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자주 몸살이 났다. 구안와사가 와서 한약을 먹었다. 그것은 암의 영역을 오히려 넓혀 주었다. 

"데려가려면 어서 데려가시옵소서..."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고 믿어온 그분에게 구토와 통증이 극에 달하는 순간마다  기도했다.

왜 엄마는 살고 싶다는 기도를 하지 않았을까?

척박했던 삶이, 인생역경에 미련 따윈 필요 없었을까? 그 이유 한 켠에 나도 한 몫했겠지...

내 집에서 한 달... 그리고 다시 친정... 응급실...  영안실...

앙상하게 소멸해 가던 작고 여린 몸은 이리저리 옮겨졌다. 


엄마가 떠나버리자 나는 허함이 극도에 달았다. 환영이 느껴졌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나와 함께했다. 늘 내 뒤에 따라다녔다. 돌아보면 없었다. 잠이 들면 꿈속으로 찾아왔다. 조용히 바라보며 서 있다. 젊거나 최근의 모습으로... 가끔은 온 가족이 바쁘게 일하는 중앙에서 말없이 진두지휘했다.  그럼에도 다 알아듣는다.


그렇게 꼬박 6개월 정도를 피폐하게 살았다. 가족들에게는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모른 척 참아내었을지도 모른다.


죽음에 대한 내 첫 이별의 강렬함에 어떤 이별이든 내성이 생겨버린 것일까? 참을 수 없는 슬픔뒤에 추억의 자리매김이 견뎌진다.

아버지와 시아버님도... 또 내 반려견들까지...


얼마 전 반려견 콩이를 잃었다. 2킬로도 안 되는 녀석의 빈자리는 컸다. 녀석의 물품을 정리하고 나니 휑하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너무너무 티가 난다.

우리 가족은 마당 한편에 녀석을 묻어 주었다. 추운 겨울... 차갑게 식어버린 작은 몸뚱이는 가장 잘 어울렸던 꼬까를 입고 먼 길을 떠났다.


세상에 완전한 이별은 없다. 아직도 나는 엄마를 만나고 오는 길에는 여전히 멀미가 난다. 그리움의 크기는 다를까? 이별의 무게를 재어 판단할 수는 없다. 살면서 훅훅 들이치는 상황마다의 그리움과 기억들은 내 안에서 언제든지 끄집어내 진다.

형제들과 가벼운 식사자리에서  불현듯 내부모가 보이고 사소한 남편의 행동에서 시아버님의 뭉뚝한 친절이 보인다.


이별은 사실 없다.

내 안에 있는 그 모든 추억을 긁어 내 파버리지 않는 한 이별을 할 수가 없다.

앞으로 찾아와 그리워질 이별,  내가 주인공이 될지도 모를 이별...

준비될 수도 준비할 수도 없는 이별들이 사방에서  내 안에서까지 때를 엿보고 있다.


후회 없이 살고 모질지 않아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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