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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고양이 Jun 21. 2024

김치말이국수

남편이 이겼다.

남편 삼 주간의 푸드패키지의 마지막 순서로 김치말이 국수를 준비했다. 대장정의 마침표였다.

새 집으로 입주날짜가 맞지 않아 집에 머물게 된 딸아이는 실로 오랜만의 집밥의 향연을 즐길 기회가 되었다. 매일 다른 것들이 내어졌다. 바빠 제시간에 즐길 수 없는 날에도 그날의 셰프특선은 어떻게든 먹었다.

 입시준비부터 성인이 될 까지 어쩌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집밥이 고픈아이다. 남편은 요때다 었는지 녀석을 위한 맞춤요리들을 조리해 냈다.


"열무김치 좀 꺼내와."  

어슬렁거리 내드디어 임무가 주어졌다. 면그릇 하나 듬뿍 담아 왔다. 군침이 훅 뿜어나더니 입안에 잔뜩 고인다. 알맞게 익었다. 참지 못하고 한 조각을 샘도발방지용으로 넣어 준다.  으음... 역시 말이 필요 없다.


남편 홀로 분주하다. 섣불리 거들겠단 생각은 하지 않는다.

"도와줄 거 없어?"

"응!"

단칼로 거절당한다.  명인? 의 자세인가? 자못 진지하다. 조리대위에는 남편계획에만 있는 들이 잔뜩 풀어헤쳐져 있다.


열무김치는 살짝  물기를 비틀 짜고 참기름으로 밑간했다. 면포 안에는 단백질 덩어리두부가 감금되어 있다

프라이팬에서 고들 거리는 돼지고기는 불고기 양념으로 달달하다. 불맛을 입혀서 딱 좋은 갈색으로 번들거리며 윤기를 자랑한다. 면요리에 고기곁들이는 걸 좋아하는 나를 위한 것이리라 맘대로 해석해 본다.


잘 삶아진 소면은 찬물에 우걱스럽게 박박문 질러 댄 후 채반에서 꾹꾹 눌다. 다음 크고 우악스러운 손에 의해  돌돌 말아져 뭉치로 봉긋하다.  남편의 소면이 유난히 쫀쫀한 것은 힘에서 오는 메커니즘도 한몫한다고 본다.


육수는 시판 냉면육수이다. 꽁꽁 얼어 있던 육수 세 봉은 하루 전냉장으로 살얼음 동동으로 변해다.


소복하게 담긴 국수 봉우리 둘레 골짜기를 육수가 메운다.  참기름양념이 된 김치고명과 담백한 두부, 그리고 달달하게 고들 거리는 불고기가 다툼 없이 자리한다. 마지막으로 볶은 통깨를 으깨 뿌려주면 드디어 완성이다.

스키에 빠져 살던 시절이 있다. 미쳐 살았다. 잠자리에 누우면 하얀 천정 슬로프(스키장 경사진 곳)로 변해 S자를 그리며 눈길을 헤치 상상을 할 정도였. 노동은 스키를 타기 위한 주말을 위해서 존재다. 열심히 일을 하고 실컷 놀.


스키는 각자 알아서 즐기면 된다. 지 혼자 신나서 리저리 곡선을 그리고 모글을 뛰어넘는다.


스키장이 개장하는 날부터 눈이 녹아  장 할 때까지 방문했다. 전국 곳곳 자리한 스키장 도장 깨기 하는 맛도 재미있었다.

그중 베어스 타운이 우리의 단골스키장이었다.

 남편회사와 제휴되어 공짜로 숙소를 이용할 수 있었으며, 티켓할인도 되었다. 무엇보다 집에서 제일 가까웠다. 

토요일, 오전근무를 마치고(주 5일제 근무가 아닐 때이다.) 남편은 트리스하듯 차 안에 스키세트를 실었다. 스키 네 개와 부츠 네 개... 아이들것은 트렁크에 싣고, 남 편 것과 내 것은 좌석 사이 트렁크까지 앞 뒤로 길게 끼다. 차 지붕에 매달아 다니기도 했는데 그 조차 귀찮아져서 대충 싣고 다녔다.


베어스타운에서 놀고 돌아올 때면 자주 들렀던 곳이 바로 '김치말이 국숫집'이었다. 

틀을 내리 눈밭에 꽂혀 지내 온몸은 만신창이로 지쳐있는 상태였다. 특히 남편은 세 모녀의 짐까지 짊어지고 다녔다. 오갈 때 운전은 물론이고, 중간중간 힘든 일은 도맡아 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메뉴가 바로 김치말이 국수였다. 메뉴선택권을 남편에게 일임했다. 남편의 원픽은 늘 '김치말이국수'였다.


첫인상은 짜 별로였다. 뭔가  음식쓰레기들을 모아 놓은 것? 같은...

그러나 맛을 보는 순간 의심은 싹 사라다.


 겨울 눈밭에서 뒹굴다 그것도 부족해 살얼음 동동 김치국수를 먹으러 일부러 들렀다.

한 입 후릅하고 넘기는 순간 이 세상 시원함은 바로 '나야!' 하는 것 같다. 지친 온몸 구석구석 세포들 다시 들썩거린다.


스키를 타러 가지 않아도 김치말이 국수는 생각이 났다. 여름 어느 날 집 근처에 있다는 분점을 방문했다. 신기하다. 그 맛이 아니다. 분명 그것인데 그것이 아니었다. 스키와 김치말이국수는 그냥 한 묶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남편의 손에서 제 조명된 그것이 식탁 위에 올라왔다. 뜻밖의 만남에 깜짝 놀랐다. 일단 비주얼은 합격이다. 아니 더 훌륭해 보였다. 아낌없이 마구 주는 사랑이다. 남편이 손수 담근 김치는 제 몫을 톡톡히 했다. 있다!!!


남편이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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