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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고양이 Jul 11. 2024

전생에 나라를 구한 여자로 살기

깍두기 흑역사

남편은 김치를 담는다.  이 흔치 않은 남자는 강제적으로 생성되었다.


악처는 남편을 철학자로 만들고, 김치똥손 아내는 남편을 김치명인으로 만들어버렸다.


"김치를 담기 시작한 동기가 뭡니까?"


"니가 안 담으니까,.."


"그게 답니까?"


"응"


혼초부터 시어머님은 김치며 웬만한 밑반찬은 다 해 셨다. 음에는 기꺼이 해다 주셨고,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다. 부재중일 때에는 현관 앞이나 경비실에 맡겨 두고 가다. 당시 이런 시어른이 흔치 않아 주변의 부러움을 사곤 했. 


어머님표 김치와 밑반찬 덕분에, 국이나 찌개 혹은 계란말이정도해도 구첩반상이  되다. 요리 즐기시는 어머님은 대강하시는 법이 없었다. 김치를 담기 전, 몸을 정갈하게 하고 티끌조차 찾기 힘든 집 안팎임에도 대청소를 하셨다고 했다. 어머님께 김치 담기란 하나의 의식이었다.  옆에 앉아 있으면 휘적이는 예술 같은 손길에 마취되고 다. 또 반복되는 스토리는 덤으로 따라왔다. 머님은 관찰학습이 되기를 희망하셨을것이다. 그러나 며느리는 그런 그릇이 못 되었다.


아이를 위해 담아주시던  유아용 두기와 친구 김장까지 도와 무채를 썰어 주셨던 일은 레전드다. 0.5cm 정도로 반듯하게 썰린 석류알만한 정육각형 깍두기, 그리고 바늘귀도 뚫고 갈 만큼 가늘게 린 무채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무채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고 놀다. 김장철이라 여기저기 김장들로 분주 할 때였다. 어머님이 웬일로 우리 집에서 하시겠다는 것이다. 1박2일 예정이었다. 그때 옆 동에 사는 친구가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셨다. 쉬는 틈을 타 그 친구의 무채를 대신 썰어 주시겠다 나선 것이다.

기대조차 못 했던 도움에 몸 둘 바를 모르던 친구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인정받는 것을 즐기시고, 또 그것을 뽐내셨다. 그렇게 영원할 것 같던 반찬조공?에 나는 겁 없이 길들여졌다.


큰 딸아이가 엉금거릴 즈음 김치 담기에 도전이라는 것을 한 적 있다.  아무렇게나 담아도 먹을만한 것이 깍두기고 하기에 우습게 준비하고 대차게 까였다.

 멘토로 나선 이는 큰 언니였다. 김치축에도 들지 않아 깍두기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며 난도가 음을 거듭 강조했다. 까짓 휘릭휘릭 담아다가 여기저기 퍼줄 수도 있겠다 장수 구구하듯 일어나지도 않은 결론에 미리 설래발이었다.


"무 동강동강 썰어... 굵은소금을 적당히 뿌리.. 쪼매 지나면 물이 밑에 고일끼라...  물은 리삐고...마... 을 쏘가... 고추 가리 풀고, 액젓, 마늘, 실파로 요래요래 버무리면 는기지. 세쉽다 아이가. "

포항으시집서울출신 니는 설렁설렁 쉽게도 알려을 것이다.


무 동강을 내고 다시 가로로 세로로 적당한 크기로 썰. 간수가 적당히 빠진 천일염을 한 주먹 쥐어 촤라락 차라락...당한 간이라는 게 참 . 램단위로 재어 요리하던 초짜일 때니 더 그랬다. 소금을 뿌리는 손가락 끝이 주저주저한다. 생각과는 다르게 소심하다. 쫙쫙!! 자신 있는 스냅으로 손을 호령하던 어머님 같지 않다. 여놓고도 조마조마하며 단위로 보았다.

무 두 조각정도의 물이 고였을 때 채반에 받쳐 물기를 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잘 흘러갔다.  자꾸 전화하는 동생이 귀찮아질만도 한 큰 언니는 인내심있게 코치를 해 주었다. 양념들과 무의 콜라보 합체가 시작되며 버무려졌다. 이 쓰리도록 맛 보았다. 간 보기에 이력이 있다. 그런데 내 김치의 간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요상한 일이다. 그래서 김치를 담을 때면 다른 사람들에게 맛을 보이는 것인가?


"어미맛도 아비맛도 아니다.

"니맛도 내 맛도 아닌 거..."  

이지 않는 외침들로 머릿속 복잡했지만 쨌던 내 첫김치의 완성이었다.


내가 해 주는 것은 뭐든 달게 먹던 남편인데 젓가락의 방향이 영 그렇다.  먹을만하다면서 다.


"맛있다며 왜 안 먹어?"


"내가 언제 맛있다고 했냐? 먹을만하다고 했지"


아...남자들의 먹을만하다는 것은 도저히 먹을 수 없다는 의미인 것을 그제야 알았다. 실패담을 들은 멘토는 어떻게 하면 맛이 없을 수 있냐며 그 어려운 일을 해 낸 동생을 신기해 했다.

그것으로 나의 김치 담기 도전은 처음이자 끝이 되어 버렸다. 그래 그냥 얻어먹고 살자!!


위기가 찾아왔다. 어머님의 건강이 나빠진 것이다. 연로해지기도 했고, 차례 관절수술은 부엌이 더이상 당신만의 공간이 되지 못함을 확인시켜 주었다. 시아버님이, 큰며느리가, 작은 며느리가, 아니 손녀 손자들까지...일일이 여쭤보고 행했던 당신의 공간이 남의 손으로 넘어가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넙죽넙죽 받아먹기만 하던 자식들이 이제는 교대로 해다 드렸다. 간혹 반찬을 사다 드셨다는 것도 들었다. 남이 해 준 음식은 평생 안 드실 분 같았는데 환경이 변하면 어쩔 수 없나 보다.


사 먹는 김치 적응 지 않았다. 맛은 있었으나 어색했다. 양념이 베이지 않고 겉도는 것 았다. 손길이 가지 않으니 남은 것들은 찌게나 국등으로 재 활용되었다. 기분 탓일까? 찌개에 넣어도 맛이 없다는 것이...


참다 못 한 남편이  벗고 나섰다. 고도 없이 장을 봐오더니 자 분주했.

투박한 손 거쳐  동강내진 무는 더 잘게 쪼게 져서 간수가 쪽 빠진 굵은소금으로 간 배도록 했다.  1cm 남짓 정육면체 무 조각각종 양념들과 콜라보를 이루며 그럴듯하게 버무려졌다.

나쁘지 않았다. 고춧가루로 범벅된 남편손에 들려진 한 조각이 내 물렸다. 묘한 향기가 입안에서 맴돌았만, 간이 괜찮다.  남자... 확실히 나보다는 낫다.


다음날, 금한 우리는 숙성 중인 김치을 열어보았다. 이상했다. 어제의 먹음직스러운 초록, 빨강이는 간데없. 조각들이 모두 청보라로 덧칠되어 있었다. 사이 무슨 일이 있던 것이냐? 누군가 작정하고 망치려 든 것 마냥 그랬다. 씁쓰레다. 더 익어지면 괜찮을까?그러나..담날에는 더 푸르죽딩... 그다음 날에는 거무튀튀? 할 수 없는 색깔로 변해 갔다. 익으면 세큼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이상한 맛이 입안에 가득 찼다. !


-요리책 레시피에는  '갓'을 넣으라고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날 마트에 '갓'이라는 것이 없었다.
-다행히 '쑥갓'이라는 푯말의 채소가 보였다.
-갓이구나!

주변에 물어보기만 했어도 이 참상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남자가 장을 보고 이래저래 물어보는 것은 어색할 때였다. 그렇게 갓이 아닌 쑥갓은 의지와 상관없이 깍두기 속 빌런이 되어 버렸다.


남편의 깍두기는 아예 통째로 버려졌다


지금의 남편은 깍두기정도는 아주 쉽게 담는다. 처음 실패한 깍두기는 내게는 끝이었고, 남편에게는 시작이었다. 나는 포기했으, 남편은 달랐다. 부의 자율적인 선택이 나은 결과는 아주 바람직하게 흘러가고 다.


남편은 거의 다 먹어 얼마 안 남아 곰삭을 정도가 되면 양을 잘게 썰어 깍두기 양볶음밥을 해 주곤 한다. 이게 또 아주 별미다. 용산 근처 맛집보다 훨씬 맛나게 한다.


"사실 김치는 말이야. 남자가 담아야 하는 게 맞아. 과정에서 오는 일련의 행위들이 다 힘을 필요로 하더라고..."

"너처럼 쬐끄만 애가 하기에는 힘이 부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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