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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의 비밀이라니

럭키?

by 오월의고양이

"니는 강보에 싸아가 윗목에 내치 뿌렸다 아이가. 고마 주거삐라고..."

언니는 포항살이 40년이 더 되어가는 사투리로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엉? 왜애...??


눈을 똥그진 나를 보더니 아차 싶었나 보다.

"니도 알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내쳐져 죽으라고 웃목으로 밀쳐졌다는 실을? 죽으라고? 나를? 첫 젖도 물리지 않은 채?


1961년 가을 어느 날, 절하고 애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 천지신명님, 삼신할미님 제발 고추하나만 달고 나오게 해...' 야 했었다.


그러나 뿌에엥!!빼악빼악! 울음리와 공기마저 삼켜버린 침묵.

삐악 대는 소리를 덮어버리는 거친 숨과 갈라진 울음이 토해진다. 바락바락 내 할머니의 통곡소리다. 아들이 아닌 딸이 태어났다는 이유이다.


아들 낳으면 먹이려던 소고기 미역국은 할머니 손에 의해 수채구멍에 처박히듯 버려졌다.


"아이고오 아이고오 아이... 고오...


누가 보면 어나자마자 바로 죽어나간 초상집이다. 서슬 퍼레진 할머니의 독기 어린 한 마디 한 마디는 엄마의 심장에 박혀 통증조차 느낄 수 없이 후비어졌다. 만담 같은 일장 푸념이 계속된다. 골백번도 더 들었을 그 소리들... 시집와서 한 일이라고 당신 귀한 아들 쏙싹거려 쓸모없는 것들을 셋이나, 그것도 부족해 또 가시나를 낳았다 것.


정신줄을 놓아 멍하게 누워 천장만 바라보던 엄마, 파가 안겨주는 나를 그만 내쳐서는 윗목으로 밀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둘은 방치되어 죽을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오촌 어르신의 타 이름 끝에서야 나를 품에 안았다고 했다. 그것은 엄마의 목숨 줄이기도 했다.

몇 번을 버리자고 했던 엄마의 목숨줄... 딸을 낳을 때마다 쥐어 흔들리던 쉽고 가벼운...2년 , 부리부리한 눈동자에 영롱하고 뽀얀 피부를 가진 수려한 용모의 들이 때까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 들 곤 했다.

아들의 탄생은 엄마의 목숨줄을 늘려주었고, 아버지는 대를 이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시집살이가 탄탄대로 꽃길이 되어 가지는 못 했다. 할머니의 이기적인 인성은 쉴 새 없이 엄마를 닦달하고 구박하는데 소진되었다.


나는 아주 고집스럽고 이기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할머니와는 어려서부터 사이가 아주 좋지 않았다. 아버지의 혼쭐을 피해 할머니 품으로 도망가면 오히려 내어 놓고 여봐라 혼내라 던 당신과는 대 놓고 척을 졌다.


귀한 아들, 아래동생은 사건건 내 신경에 거슬렸다. 그래서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철이 들 때까지 우리는 싸우고 싸웠다. 동생에게만 가는 혜택을 용납할 수 없었다. 석은 사실 죄가 없었고 나를 책임질 이유도 없었으며 저절로 주어지는 여유로움에 욕심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어거지로 울고불고해서 쟁취해야 했다. 밥공기조차도 동생보다 쌀 한톨이라도 더 많아야 직성이 풀렸다. 금 생각해 보니 이유 있는 악다구니였지 싶다.


욕심 많고, 심술이 더덕 해서 형제들과 여차하면 맞짱을 떴다. 바로 위의 언니와는 소유권다툼이 많았고, 바로 밑 남동생과는 권다툼이 주가 되었다. 엄마는 그런 나 몰래 동생에게만 뭔가를 시도하다 번번이 내게 적발되었다.


"리 셋째(첫째언니가 어린 나이에 명을 달리해서 내가 셋째가 되었다)가 시집을 가서 이렇게 훌륭하게 살고 있으니 참 좋다."

35년째 아무 문제 없이 결혼을 유지하는 것이 믿기지 않으신지 만날 때마다 작은 엄마는 그러신다. 육십 넘은 조카를 아직도 그 철없던 사춘기소녀정도로 생각 드시는 듯도 했다.

한 때 함께 대가족으로 살아 나를 너무도 잘 아시는 작은 엄마의 한 마디로 모인 형제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교환했다.


"도대체 척들은 너만 보면 왜 그렇게들 그러는 거야?

돌아오는 길 가족모임 때마다 새로운 에피소드가 방출되는 것이 신기한 남편의 질문이다.


"덕분에 당신은 나 델꼬 살아주는 귀인이자 불쌍한 사람으로 대접 잘 받고 있잖아." 깔깔 웃었다.

내 남편은 구제불능 천방지축인 나를 사람으로 만든 능력자.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는 셋째 사위를 늘 짠한 표정으로 바라보셨으며 특히 이뻐하셨다.


부모님은 나에 해서만은 왠간한것은 넘어가주는 너그러움으로 기억된다. 아버지는 조건 없이 나를 편애했으며 엄마는 어떤 제제도 강제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주 엄해서 늘 조심조심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나는 열외였다.

단체기압일 때 빼놓고는 딱히 많이 혼이 난 기억이 없다.


가난한 가정이었지만 부족하지 않았다. 당신들은 나로 하여금 당신들의 자랑인 양 했었다. 내가 고른 배우자를 무조건적으로 귀하게 대접했으며, 내 남편 또한 그런 부모님께 참 잘했다.


뜻하지 않게 출생의 비밀이 우연하게 발설되어 내 귀에 들어오자 새롭게 과거가 조명된다. 강보에 싸여 내 버려져졌던 엄마의 손에 대한 기억은 없다. 아들이기를 바라고 정성 다해 열 달을 품었을 것이다. 한 순간의 밀침이 있다 해서 부모자식 간이 가늘어질 리 없건만 당사자인 엄마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내 큰 아이보다도 젊었을 적 엄마.

하늘 아래 편이 돼 줄 그 누군가도 기대할 수 없었던 엄마.

괜찮아 엄마. 엄마 잘못이 아니야. 난 아무렇지도 않았어.

기억에도 없는걸



그러고보니

엄마의 아픈 심장 한 켠 덕에 내가 럭키한거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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