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나라를 구한 여자로 살고 싶다
남편 밥상을 받는 여자
어제는 내 아점으로 버섯이 듬뿍 들어간 버섯 수프를 준비해 두고 나갔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에는 만두전골을..
언제부턴가 남편이 해 주는 음식을 받아먹는 것이 일상사가 되었다. 한 덩치 하는 남편이 버티고 있는 주방에 어쩌다 들어가면 이상하다. 어색하다.
남편은 자신의 음식에 완전 진심이다. 재료 하나하나가 말을 해 주고 있다고나 할까?
전복이 무려 8마리나 들어간 전복죽으로 호사를 시켜주는가 하면, 실한 낙지로 불맛 제대로인 낙지볶음을 해서 내어 놓았다. 무교동 낙지볶음보다 이게 더 맛나다.
남편 혼자서 김장을 시작한 것도 오래전이다. 연로하신 어머님을 대신해 나선 것이 시작이 되어 십 년 넘게 겨울 김치를 책임지고 있다. 감칠맛이 제대로다.
나는 남편이 해 주는 밥상을 넙죽 잘도 받아먹는 여자이다.
나는 아침에 게으르다. 일어나기 쉽지 않다. 하얀 면이불을 덮어쓰고 뭉기적거리는 아침을 즐긴다. 그래서 지각도 많이 했었다.
결혼과 동시에 깨어나야 했다. 아내가 되면서, 그리고 얼마 안 되어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 아침은 부산해져 버렸다. 학원을 운영하면서 아이들도 케어해야 했다. 출근을 하면 아이들도 지도해야 했다. 매일매일 새롭게 프로그래밍되어야 했다. 개미였다가, 호랑이였다가... 여우였다가... 사람이 아니 무니다. 엄마라는 생명체입니다만...
" 도시락을 내가 챙겨 줄까?"덤덤하게 던진 남편의 말을 덜컥 물어 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결혼하고 이십 년쯤 흘러가던 시점인 것 같다. 고등학생인 둘째의 아침을 책임져 보겠다고 했다.
남편은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다. 새벽 6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알람이 울리고, 놀랍게도 벌떡 일어 난다. 이십 년 넘게 새벽 별을 벗 삼아 출근했었다 해도 경이로울 정도의 루틴이다.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대단한 사람이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에 무조건 오케이 했다. 하루만, 아니 며칠만 해 주어도 땡큐였다.
처음엔 내가 준비해 둔 것으로 채워 주는 정도였다. 따끈하게 갓 지은 밥과 함께 미리 만들어 둔 반찬이 담긴 도시락은 아이의 손에 들려 학교로 향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게을러지고 성의가 없어졌다. 보다 못 한 남편이 서투른 조리 솜씨로 아빠표 음식을 조리해 내기 시작했다. 아내의 늦잠사수를 위해 손수 나선 남편... 생각해도 멋있다. 무엇이든 대강하는 것이 없는 남편은 사랑하는 딸이 먹을 것에도 서투를지언정 최선을 다 했을 것이다.
학교에서 내어 놓는 아빠표 도시락은 시간이 흐르면서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요즘처럼 SNS가 활발하게 펼쳐지는 시기였다면 남편은 인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한두 개가 아닌, 최대 12가지나 되는 반찬들이 도시락에 채워져 학교로 향했다. 반찬의 개수를 세어보며 친구들은 신기해하며 부러워했다고 전해 주었다. 딸과 그 친구들의 찬사 덕분인지 남편의 도시락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도시락으로 디벨롭해 나갔다. 반찬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같은 재료로 다른 종류의 음식이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엄마가 없냐는 질문을 받아 오기도 했다. 엄마는 살아 있으며 자고 있다고 했다며 해맑게 웃었다. 아프지도 않다고 했단다.
음식을 조리하는 것은 과학이며 창의력의 집합체인 것 같다. 이 것은 남편 성향과 맞아떨어진 것 같기도 하다. 분석하기 좋아하는 남편은 자신이 만든 음식에 크리에이티브한 상상력을 추가하면서 자신만의 요리를 창조하기 시작했다. 상황은 아주 바람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매일 진화를 거듭하던 남편의 요리는 일취월장을 넘어 전문가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 맛은 물론이고 조리과정에서 재료들이 섞이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에 철학까지 담아내고 있다. 남편이 자신의 조리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낼 때 그 표정 그 말투가 참 좋다.
섬세하면 이상할 것 같은 우람한 큰 손으로 매일 아내를 위해 남편만의 조리 방정식으로 풀어내는 사랑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 낼 수 있겠는가?
다 먹어치우고 빈 접시를 보면서... 아! 사진... 남겼어야 했는데.. 후회를 한다.
어쩌다 남기려 하면 그게 뭐라고 사진을 찍느냐 어색해한다. 그래도 컷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준다.
식후 설거지는 내가 한다. 설거지까지 남편이 하게 된다면 완전 양아치가... 놔두라는 남편말을 뒤로하고 서둘러 치워 버린다. 주객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어쩌다 라면을 끓이면 왠지 요리를 내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남편은 라면만큼은 내 손에 맡기고 있다.
계속 남편의 밥상을 받고 싶다. 그래서 나는 속삭대고 웃고 살살거린다.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여자로 살고 싶다.
오늘도 티브이 화면에 비치는 맛난 것들을 보며 침을 흘리는 내게... 만들어 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