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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고양이 Nov 14. 2023

비싼 배설물...

루왁커피

  18세기 무렵, 동남아시아를 지배하던 네덜란드 상인들은 생산되는 커피를 전량 수출하고 현지인들은 맛도 못 보게 했다. 남아시아 야자 사향고양이는 달콤 새콤한 빨간 커피열매를 좋아한다. 커피맛을 보고 싶어 했던 현지인들은 이 동물의 배설물속에서 원두가 소화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적당히 발효까지 되어 있는 이 커피콩은 아주 맛이 있었다.

유해조수 취급을 받아 사냥당하던 사향고양이들은 이제... 루왁을 대량생산하고픈 사람들에 의해 양계장의 닭처럼 평생 갇혀 살아야 했다. 달콤하고 맛있는 것을 스스로 찾아내어 맛나게 먹어 왔던 사향고양이들은 사료로 주어지는 열매만 먹어야 한다.

아라비카를 먹으면 아라비카루왁을 루브스타를 섭취하면 루브스타 루왁을 배설물로 쏟아 낸다.


 남편친구의 초대로 인도네시아에 간 적이 있다. 십 년도 넘은 기억이다. 당시 골프에 한창 빠져 있을 터라 운동과 관광을 겸하기에는 다소 일주일이라는 일정은 빡빡해 있었다.


원두커피에 맛 들인 것도 그맘때쯤이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루왁을 반드시 사 와야 했다.   현지에서 살고 있는 지인조차도 셔 본 적이 없는 생소한 원두였다. 나도 검색해서 알아낸 사실이기는 하다.


지금이야 마트에서도 가격이 적당한 루왁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본토(인도네시아)에서 조차도 고급 백화점정도에서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널린 게 커핀데 무커피가 그리 비싸, 파는 데도 몇 군데 읍꼬..."


 커피 따위를 사려고 비싼 돈을 들이는 친구 와이프를 대놓고는 못하고 사람 좋은 병열씨는 특유의 투덜거림과 함께 결국 위치를 알아내 주었다. 그는 아마 아직도 루왁이라는 이름을 기억 못 할 수 있다. 아무꺼나 마시면 커피지. 뭐 있나..루..뭐라꼬..ㅋㅋ


흐릿한 기억이지만 200그램 정도의 루왁 원두를 커피값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비싼 금액을 치르고 구입했던 것 같다. 석이 담겨도 어울릴만한 화려한 장식을 한 사각 틴 케이스 안에는 붉고 초록한 금장봉투가 들어 있었다, 그 안에 루왁이 있을 터였다.  그래 내 너를 기어코 만나고야 말았구나.


특별한 맛을 기대했건만 실망스러웠다. 깊은 맛을 못 느끼겠는 거다. 그러나 아닌 척했다. 쪼끔씩 지인들에게 맛 보이며 자랑하는 용도 사용되었다.   몇 개월에 거쳐  운동할 때... 모임 갈 때... 구입해 온 스토리에 약간의 허세까지 더해져  지인들에게 맛을 보였다. 인들은 맛이 다르고 풍미가 있다고 추켜세워 주었다. 속으로는 글쎄... 그냥 루왁이라는 것을 한 번 마셔 본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원두를 혀에 적셔 마실 때 원가계산하는 저렴함도 함께 마셨으니 제대로  된 맛을 음미했다고 할 수 없다.

첫째 부연 배우면서 연출가이다. 제8회 도담 페스티벌 출품작 무대에 올린다고 한다. 시나리오를 직접 연출까지 담당하고 있다. 작품제목이 '루왁'이란다. 의도가 궁금했다.


"사향고양이는 원래 맛이 좋고 우수한 열매만 골라서 먹었다는 거야.  질 좋은 식사를 했으니 배설물도 당연히 좋고. 당시 현지인들이 채취한 배설물속에는 발효까지 잘 된 커피들어 있었던 거 같애. 맛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지."

"하지만 가둬놓고 이는 저렴한 베리는 다르다는 거야

 "많은 양의 루왁을 얻어 이득을 취하고 싶은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커피열매를 먹게 했어."

"그 배설물로는 좋은 루왁이 나올 리 없다는 거야."

"싸구려 베리를 먹 놓고는 비싼 루왁을 바라는 거야 사람들은..."


커피루왁에서 모티브를 얻어 창출해 낸 스토리가 궁금해졌다.  그러나 시나리오 원본을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다. 지난번 공연에서 미리 봐 버린 스토리 오지랖엄마의 모니터링이 되어버렸다.  이러저러한 어설픈 충고를 했다.  김부연은  어쭙잖은 어드바이스를 인내심 있게 잘 들어주었다. 이미 알고 있는 문제이건만 극의 흐름상 변형될 수밖에 없었음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하지 말았어야 했다. 관계되는 배우과 스텝들이 연습하는 과정에서 이미 여러 번 고치고 수정했을 였다. 고작 몇 분 동안 읽은 시나리오를 가지고 감 나와라 배 나와라를 한 것이다.


 연출이, 배우가, 무엇을 의도하고 전달하려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선 엄마가 아니 관객이 되어 주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다.


시놉시스에서 주어지는 몇 개의 문장을 유추해 보고 내 과거의 허영이 교차된다. 여행 중 루왁으로 벌어졌던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100번은 넘게 해 주었음직한 내 헤픈 스토리를 처음 듣는 표정으로 경청해 준다. 아직도 털어 버리지 못한 허세의 잔재들이 작품을 보고 난 뒤 정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세상 모든 것이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비싸고 고급진 맛이라 일 컬러 지는 고급커피루왁은 결국 똥 뿐이다.





추신... 지금 대학로에는 최저 시급은커녕 오로지 열정페이로 연습을 하고 택도 없는 대가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꿈을 향해 노력하는 젊은 청춘들이 있습니다. 작은 무대, 좁은 객석이라 해도 하찮은 공연은 없습니다. 길에서, 무대에서 이런 우리의 청춘들을 만나신다면 응원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그들은 그 힘을 양분 삼아 더더욱 진화되고 화려한 변태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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