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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고양이 Nov 28. 2023

육십에 카페를 열었다

저, 여기서 내려요...

작은 골목카페, 로스팅지 않습니다. 드립커피도 아닙니다.


적당한, 보통의 입맛에 맞춰 브렌딩 된 원두로 커피를 내립니다. 사실 저는 커피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원두결정이 아주 쉬웠지요.


샘플을 고르는 기준도 단순했습니다. 보통의 입맛을 가진 몇 명이 맛나다고 하면 땡!이었거든요. 이러저러 의견이 다양한 원두는 배제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시음? 즐기는?  저와 딸아이 그리고 남편의 의견이 중요했습니다. 이기적인가요? 맞습니다.  입맛이 선택의 우선기준에 있었습니다. 


고소하고 식어도 맛이 그대로인 커피가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저는 매일 커피를 마십니다. 또 마시는 습관이 있습니다. 한잔을 여러  나눠 음미한답니다. 뜨거운, 미지근한, 그리고 차게 식어버린... 나눠 마실 때마다 다른 맛으로 다가옵니다.


사실, 이 습관은 과거 직업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출근해서 한 잔을 내려서는 퇴근 때까지 꼴짝대었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일까요? 편안하게 한 잔의 커피를 즐기지 못했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 과정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잠깐의 짬과 쌉쌀한 커피 한 모금... 꽤 괜찮은 나만의 힐링이었지요.


그래서 그렇게 원두가 결정되었어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가족들과는 다르게 저는 태양이 작렬하 한 여름에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십니다.


그리고는 한 모금.. 또 한 모금... 꼴깍댑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몇(한자릿수) 모금할 겁니다.


그렇게 이기적으로 정해진 원두 삼 년 넘게 내리고 있네요.  신선한 원두로 로스팅을 해 주시는 '오늘의 커피' 사장님 감사합니다.


브라질 작황이 안 좋아 원두값이 치 솓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회경험상 그 쯤이면 값을 올릴 거라 예상했습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습니다.


기다리다 못 한 제가 전화를 걸고 말았네요. 웃기지요? 올리지 않는 이유를 묻는 이런 상황... 


"브라질 원두가 너무 품질이 안 좋아서 비슷한 맛의 원두로 로스팅해 드리고 있어요. 다시 작황이 좋아지면 또 그렇게 하고요."

답이 아주 간단하죠? 보통은 이 기회 올려서 말뚝박자 뭐 그러지 않나요? 이 분도 돈으로는 부자 되기 힘들듯 하네요. 


그렇게 정해진 원두 지금까지 내리고 있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생각보다 저랑 입맛이 맞는 분들이 제법 있는 겁니다.  그런 분들을 만나면 괜히 기분이가 좋아집니다.  부러 찾아왔는데 문이 닫혀 아쉬웠다는 분들까지... 뭐죠?


저가커피 삼대장이 포진해 있는 아파트 촌에서도 십 분여를 걸어야 당도하는 제 카페를 부러 방문하시기도 해요. 하긴 더 멀리서도 오시긴 하십니다.


오만하게도, 커피를 남기는 손님들이 계시면 막...  왜? 남겼을까?고민이 됩니다. 테이크아웃잔에 담아 드릴까요? 됐어요... 네, 그래주시겠어요? 다양한 답들이 오갑니다. 일회용 컵에 담아 식은 커피를 드시겠다는 분을 만나면 왠지 정이 갑니다. 나랑 비슷한 분인가 해서요.


개인마다 성향이 있고 기호식품이 다르지요. 그래서 그려려니 하면서도 일단 제가 내려드리는 커피는 맛이 있기를 바래요. 그래서 자꾸 눈치를 봅니다. 티 나지 않게...


오늘도 저는 여기서 내립니다. 고소하면서도 약간의 신맛과 다크 한 초콜릿맛을 혀끝에 남기는 커피를요.


아... 첨부하자면, 신맛을 즐기던 커피에 진심인 고객이 계는데요. 아담하고 소박한 분위기가 좋아서 들르게 되었다네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제 카페 원두를 너무너무 좋아해 주셨어요. 그러고는 리는 매일 만나다시피 했어요. 어쩌다 안 오는 날에는 담날 방문해서 이유를 설명해야 될 정도였죠.


지금은 괌으로 꿈을 찾아 떠나셨지요. 그때는 어찌나 서운하던지... 내 젊은 고객님은 하고 싶으신 게 아주 많아서 여기저기서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거죠.

얼마 전 잠깐 들어와서는  들러주셨어요. 어찌나 감동이던지... 본가가 저의 카페와는 거의 두 시간 넘은 거리에 있거든요.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폭풍수다를 떨었답니다. 그러면서 괌에 이런 카페가 왜 없는지..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기분 좋은 덕담도 해 주시네요. 다음은 미국으로 갈 거라네요. 괌물이 좋은지 더 이뻐지고 여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네요.


원두의 퀄리티? 뭐 그런 거 저는 잘 몰라요.


그런데 말이지요. 제 입맛에 맞는 커피는 알아요. 또 그런 비슷한 사람들이 칭찬해 주면 그런갑다 하면서 내 탁월한 선택에 박수를 보냅니다.


여기서 그렇게 매일 내립니다. 보통스럽고  단순하지만, 쌉쌀한 인생커피를...


아! 얼마나 맛난 지 한 번 보자! 하면서 오시는 분들은 사절입니다.


죄송해요. 너무 놀라셨죠. 그래도 지나시는 길이 있으시면 한 번 들려주실래요?


저는 여기서... 계속 내리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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