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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고양이 Dec 11. 2023

전생에 나라를 구한 여자로 살고 싶다.

헤어질 결심...

집을 나서기 전 현관 거울 앞에 선다. 신발장안에는 우아하고 꼿꼿한 하이힐들이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너로 정했다. 신어 본다. 다리 하나가 쑤욱 공중부양한다.  삐쩍 거리며 어정쩡한 자세가 되어 마저 신는다. 공기가 다르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본다. 힙과 가슴이 덩달아 긴장한다. 비스듬하게 엉덩이 라인까지 훑어본다. 입꼬리를 씰룩거린다. 이 정도면 되겠다.  한껏 추켜올려진 자존감을 장착하고 현관을 나선다.


 "이걸 신으셨다고요? 당근으로 내어 놓은 부(발목까지 감싸는 높은 굽의 앵클부츠)를 사러 온 내 또래 엄마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아...  직구한 건,  상품이어요." 게는 아무렇지 않 높이인데 그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위한 것이라 했다. 너무 높다면서도 두 켤레를 챙겨 갔다.  가의 힐 두 켤레가 헐값에 팔려 버렸다.


성인이 된 후 지금까지 하이힐은 쭈욱 내 완소 아이템이 되버렸다.

플렛한 운동화를 신으면 몸이 땅 속으로 져 내 느낌이 들었다.  가 작아서인지 전체적으로 보면 다리가 더 짧아 보인다.  힐 이런 콤플렉스를  완화시켜 주었다. 퍼모델까지는 아니어도 다리를 훨씬 길고 가늘어 보이게 했다.  마법 따로 없다.


작은 사람 힐을 신고 어정쩡한 자세가 되면 배가 나와 보인다. 그러나  배에 힘을 꽉 주어 몸을 꼿꼿이 세우면 뱃살을  단한 근육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둘째가 네 살 즈음이었다.  쉬 마렵다는 아이를 안고 계단을 내려오다 헛발질 했다. 중심을 잃고 곤두박질치며 꾸라 다. 계단 앞 모서리 기둥에 얼굴 정면으로 박다. '빡!!!'  "엄마... 피..."  둘째 귀여운 둘째 손가락이 내 얼굴정면을 가리켰다. 가 흐르고 있었다. 기둥모서리 부딪혀서 이마부터 턱까지 세로로 찢어져 렸다. 코가 무사한건 불행중 다행이다. 도끼로 누군가가 살짝 내려 찍은 듯한 모양새다. 상처부위를 벌려보니 제법 깊다.  지혈을 위해  상처를 오므렸다. 있는 힘껏... 상처부위가 공기와 접촉이라도되세균감염으로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둘러 도착한 병원에서 응급 수술이 진행되었다.


 젊은 외과의사의 한 땀 한 땀 공들인 바느질은 성공적이었다. 시간이 꽤 흐른 현재  흔적 미미하다.  이 좋았다.


시어머님 얼굴을 세로 지르는  횡단선단순한 부주의라고 생각지 않으셨다.   때 자기 부상하듯이 각거리는 모양새가 영 불안하셨다는 것이다.  

"이제는 나이를 생각해서... 신발도.."  항상 끝말은 흐려주셨다.


힐과 동반되어야 하는 것들이 또 있었다. 어울리는 의상과 액세서리, 그리고 기타 등등...


주절주절 목록을 흘리고 다니면 남편의 장바구니에 담겨서 내 손에 쥐어졌다.


 덕분에 내 돈 내 산은 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끝에 치덕 치덕 묻혀 두면  생일 또는 기념일에는 어김없이 내 손아귀에 들어온다.


"내가 명품운운 할 때 한심하지는 않았어?"   남편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싫은 내색 한 번을 안 한 사람이다.

"없었어. 이 여자가 그러는 건 다... 이유가 있나 보다 했지."

"네가 생각 없이  마구 사들이는 것도 아니잖아." 그럴싸하게 포장도 준다. 고수다.

실수로 백을 잃어버리면 더 좋은 을 선물했다. 편의 선물은 작은 것이 하나도 없다.  길 가다가 주워오는 것조차도 다 귀하다.

술 한잔 먹은 귀갓길, 지하철 가판대에서 보석 박힌 귀걸이와 목걸이를 발견하고는 아내를 떠올리는 로맨틱가이다.


 

나는 지금 그동안 내 모든 육체를 휘감고 있던 치렁하고 무거웠던 탐욕들과의 이별을 진행 중이다. 다소는 허황되고, 과장된 내 소비패턴의 흐름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사실... 지금은 필요가 없다.

" 산책이나 운동할 때도  입으세요. 저는 그러거든요. 아깝잖아요." 단골 고객의 말도 일정 부분 고개가 끄덕여진다.   화려하고 젊었으며 이뻤을 것으로 짐작되는 외모... 매일의 산책길에 과거의 녀가 동반되어 주는구나.


그러나  어쩌다 산책길에는 간편 운동복이면 되었고, 가뭄에 콩나듯한 나들이에 선택되는 아이템은 몇 가지로 추려졌다.


 비우고 채우지 않으니 계절마다 부족했던 옷장은 넉넉해지고 담겨있는 것들끼리는 사이좋게 공기를 나눠마신다.

모임도 확 줄였. 남은 인연들이 소중해진다.

 오늘보다 젊은 어제의 내가 잘 발효 되어 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무모하고 한심했을 수도 있는 어제가 없었다면 아마도 아직까지  '미련'이라는 틀 안에서 허우적거릴 수도 있다.  실수에도 다 이유가 있었구나.


우연으로 만났다가 인연이 되고 실패가 실력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인가?


나는 지금 간단해지고 헐렁해지고 쉬워진다. 삶이 편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그렇게 기꺼이 어제와 헤어져야겠다.


다행스럽게도...내 옆에는 항상 같은 보폭으로 동행해 주는 이가  있다.



하이힐은...

태양왕 루이 14세와 루이 15세의 첩, 퐁파두르부인의 영향으로 오늘날의 형태로 완성되었다. 특히  나르시시스트로 유명한 루이 14세는 자신의 다리를 뽐내기 위해 수천 켤레의 구두를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키를 커 보이게 함으로써 더 권위 있어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재미있는 잡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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