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대 근무
나는 경비원이다. 처음부터 경비원은 아니었다. 20년 넘게 잘 다니던 회사를 홧김에 때려치운 후 물류 센터에서 6개월, 배달 납품 기사로 3개월, 공공 도서관 책 배달 업무 3개월을 전전한 끝에 정년이 보장되는 경비원으로 취직을 했던 것이다.
경비원은 교대직이라 아침 근무 2일, 저녁 근무 2일, 야간 근무 2일을 돌아가면서 한다. 평생 9시 출근, 6시 퇴근이 몸에 밴 나로서는 교대 근무라는 게 퍽 낯설었다. 특히, 야간 근무는 힘들었다.
힘들지만 장점도 있다. 휴일이 평일인 경우, 볼 일 보기 편하다는 것이다. 일부러 시간 내서 가야 할 은행을 쉽게 갈 수 있고, 병원을 다니기도 좋았다. 심심하면 평일 오후 영화관을 찾아가 한가로이 영화를 볼 수도 있고, 친구를 만나 점심 먹기도 좋았다. 취미 생활 하기도 좋았다. 공공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거나, 팔달산과 요즘 뜨는 속칭 핫플 행리단길 산책도 자주 한다. 주말이면 대기줄이 길어 군침만 흘리고 지나쳤던 맛집도 쉽게 들어갈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행정복지센터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도 편했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 단점도 있었다. 설, 추석 명절에 쉬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설령 운이 좋아 쉬더라도 명절 당일 정도가 고작이었다. 간혹 황금연휴라고 10일 정도 긴 휴일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하늘 두 쪽 난다고 해도 교대 근무는 짜인 일정에 따라 근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명절 기분을 느낄 수가 없었다. 한 해의 마지막, 12월 31일에 야간 근무하면서 새해를 경비실에서 맞이하는 착잡함도 빼놓을 수 없다.
근무 패턴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다. 아침 근무를 하기 위해서는 보통 새벽 4시 20분경 일어나야 한다. 준비하고 회사 도착하면 6시다. 여름이면 그래도 주변이 환하지만 겨울이면 캄캄한 새벽길을 나설 때 솔직히 출근하기가 엄청 싫다.
저녁 근무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근무를 마치고 집에 오면 자정이 다 되어간다. 여기서 위기가 찾아온다. 바로 배가 고프다는 것이다. 자정이 다 된 시각. 나 자신과의 사투가 시작된다. 먹느냐, 마느냐를 두고 엄청난 내적 갈등을 겪는다. 그러다 식탁 위에 치킨이나 빵이 보인다면 모든 다짐이 수포로 돌아간다. 어느새 후다닥 식탁에 앉아서 맛있게 야식을 먹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먹고 나면 그렇게 후회하는데도 말이다. 다음날 더부룩한 속을 부여잡고 또 한 번 후회하는 것은 당연한 일. 늘어나는 몸무게는 덤이다.
가장 힘든 것은 야간 근무다. 새벽 2~3시가 되면 그렇게 잠이 온다. 잠을 쫓으려 별별 짓을 다 한다. 경비실 밖을 나가서 바람을 쐰다거나, 아령을 가지고 가벼운 운동을 한다거나, 세수를 하거나, 노래를 조용히 부르는 등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하지만 의자에 앉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어느새 잠에 푹 빠지게 된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 깬다. 불과 30초 남짓. 그 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간혹 그렇게 졸다가 새벽에 출입하는 택배 차량이 문 열어달라고 경적을 울릴 때가 있다. 그러면 괜히 미안해지고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 순간뿐. 어느새 또 잠이 솔솔 밀려온다. 이렇게 달려드는 수마와 사투를 벌이다 보면 드디어 먼동이 트고 길고 길었던 야간 근무가 끝나게 된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집에 가서 빨리 자야지, 하고 도착하면 정말 웃긴 게 잠이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말똥말똥, 뒤척뒤척. 그러다 오전이 휙 하니 지나간다. 분명 쉬었는데도 쉰 것 같지가 않다. 하루 종일 머리가 멍하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정신이 멀쩡해진다. 어느 가정의학과 의사가 ‘몸에 좋은 교대 근무란 없습니다’라고 말한 게 떠오른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나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된다.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재 이 일에 만족한다. 20년 넘게 다닌 직장이 청년에서 중·장년까지의 인생 1막이라면, 현재 일은 장년에서 노년까지의 인생 2막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교대 근무의 패턴이 다르다 할지라도 한지에 먹물이 조금씩 스며들 듯이 결국 서서히 적응할 것이다. 인생 2막의 초입, 앞으로 나에게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궁금해진다. 인생 1막의 오랜 연기 경험이 2막에서의 삶에 선한 영향을 발휘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