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일기

2. CCTV

by EAST

경비실 내에는 CCTV를 볼 수 있는 대형 TV가 2대 있다. 책상에 앉아서 근무하는 것을 우리는 상황 근무라고 불렀다. 상황 근무하는 사람은 외부에서 오는 사람과 차량의 출입 기록을 적는 일과 전화를 받는 일을 한다. 또한 CCTV를 통해 회사 전체의 상황을 파악한다.


낮에는 CCTV를 볼 일이 많지 않다. 출입하는 사람이 많아서 쳐다볼 겨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낮에는 직원들이 수시로 다녀서 굳이 CCTV를 쳐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의자에 앉아서 CCTV를 쳐다보려면 약간 올려다봐야 하는데, 오랫동안 그러고 있으면 목이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CCTV는 밤 근무할 때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CCTV를 잠깐 소개하자면 좌·우측 TV 화면에 약 40개로 분할된 조그만 장면이 나온다. 늦은 저녁이나 새벽녘이면 아무 움직임이 없어서 마치 정지 화면처럼 보이지만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거나, 간혹 새가 뾰로롱 날아가는 장면이 잡히거나, 거미가 줄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CCTV는 오래돼서 그런지 어떤 화면은 컬러인데, 어떤 화면은 흑백이라 부조리하다. 게다가 설치한 지 오래된 터라 한두 곳의 CCTV는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한다. 아예 블루 스크린으로 바뀌어서 정상 화면으로 돌아올 줄 모르는, 방치된 곳도 있다. 회사에 이를 알리지만 빠르게 고쳐진 적은 별로 없다.


나는 야간 근무 때 CCTV 보는 것을 즐긴다. 딱히 할 일도 없지만 무엇보다 40개 육박하는 화면을 하나하나 쳐다보는 것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길고양이가 보이면 그 녀석의 뒤를 좇아 CCTV 여기저기로 눈을 옮긴다. 녀석은 재빨라서 이 화면 속에 있다가도 불쑥 저 화면 속에 나타나곤 한다. 고양이와 나의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간혹 너구리 식구들이 나타날 때도 있다. 회사가 시 외곽 산비탈 부근에 있기 때문에 야생 짐승이 출몰하는 일이 종종 있다. 너구리는 늦은 밤에 나타나 서너 시간을 맘껏 활보하다가 새벽 4~5시쯤 감쪽같이 사라진다. 처음에는 고양이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너구리였다. 너구리라고 확신한 것은 회사 부근 도로에 너구리나 멧돼지 출몰 경고 표지판이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너구리는 순한 편이라 사람을 보면 후다닥 도망간다. 그래도 물리는 경우기 있다고 하니 새벽 외곽 순찰을 돌 때는 살짝 긴장하기도 한다.

드물게는 고라니도 보인다. 고라니는 경계심이 강해 회사 안까지 들어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하지만 회사 정문 앞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곳 근처에서 멀뚱히 이쪽을 쳐다볼 때가 많다. 직접 실물로 보려고 경비실 밖으로 나가면 그제야 겅중겅중 우아한 다리로 폴짝폴짝 사라진다.

가장 무서운 것은 아무래도 멧돼지의 출현이다.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오금이 저려 그 자리에서 꼼짝달싹도 못할 것이다. 실제로 멧돼지가 회사 내로 들어와서 119도 출동하고 엽사까지 왔던 적도 있다고 했다. 근래에는 멧돼지가 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누가 알까 멧돼지의 마음을. 혹시라도 오늘은 슬슬 밤마실이나 나가볼까나, 하고 덜컥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그때 내가 맞닥뜨린다면. 그렇게 상상하다 보면 새벽녘 졸린 눈이 번쩍 떠진다.


처음 입사할 때 뚫어져라 CCTV를 보고 있는 나를 두고 사람들은 그러다 목 디스크 온다고 적당히 보라고 말해 주었다. 지금은 처음보다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쳐다보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CCTV 보기를 즐겨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 어떤 장면이 펼쳐질까, 하는 호기심 같은 느낌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일종의 사명감이라고 해야 할까, 경비원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좋았다. 이제는 CCTV를 보는 최적의 자세도 찾아냈다. 뒷목에 손깍지를 끼고 의자를 뒤로 눕힌 채 편안한 자세로 CCTV 속 펼쳐진 멋진 영화 한 편을 감상한다. 고양이가 무려 세 마리였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아쉬운 것은 팝콘이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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