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대 수도꼭지

내맘대로 일기 17

by EAST

4년 된 싱크대 수도꼭지가 고장 났다. 사람 부른다는 거 그까짓 것 때문에 사람까지 부르냐고, 부품만 사다 놓으라고 큰소리쳤다. 부품은 다음날 바로 왔다. 이럴 땐 로O배송 얄밉다. 못 본 체 구석으로 던져 놨다.


사실 나는 똥손이다. 연장 하나 제대로 만질 줄 모른다. 창고 가득 선반을 만들고, 온갖 공구를 줄 맞춰서 걸어 두는 게 남자의 로망이라고 한다지만 그럴 창고 있으면 차라리 홈 시어터 갖추고 영화를 보는 게 낫다는 쪽이다. 친구 녀석 회로도만 봐도 머릿속에 완성된 그림이 떠오른다나. 반대로 나는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런 내가 큰소리치다니 뭐가 씌었나, 후회가 된다. 지금이라도 사람 부르라고 할까. 그러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10일쯤 지나니 보다 못한 아내가 사람 부를까, 슬쩍 떠본다. 에라, 모르겠다. 팽개쳐진 부품 들고 주방으로 간다. 일단, 싱크대 문을 열어 본다. 갖가지 물건들로 꽉 차 있다. 주섬주섬 꺼낸다. 그러자 얼기설기 얽힌 줄들이 보인다. 마치 복잡한 회로도 보는 것 같다. 안 되겠다. 한 발 물러선다. 가만있자. 그렇지, 유튜브를 검색해 본다. 히야! 영상이 수십 개 줄줄이 나온다. 나만 어려운 게 아니구나. 묘하게 위로가 된다. 개중 조회수 많은 영상을 클릭해서 본다.


아하! 별거 아니구먼. 다시 주방으로 go go. 먼저 수도꼭지를 분리한다고 했지. 으쌰으쌰, 낑낑. 덜컹, 분리가 된다. 와우! 이게 되네. 신난다. 자랑스럽다. 일 다 끝낸 거 같다. 자신감 충만. 그다음 뭐였더라. 맞아. 물 공급 밸브 잠그랬지, 어딨 더라. 저 건가? 알쏭달쏭. 한번 해보자. 힘줘 밸브를 잠근다. 수도꼭지를 틀어본다. 물이 나오지 않는다. 야호! 2단계 성공. 무게추 분리, 호스 분리까지 끝냈다.


휴!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큰 덩치를 싱크대 문 틈 비좁은 공간으로 구겨 넣어가며 일했더니 어깨며, 허리며, 다리가 비명을 질러댔다. 드디어 분리 성공. 이제 역순으로 조립만 하면 끝.


이게 설마 안 되는 거 아니지, 조마조마. 조심조심, 정신 집중해서 끼고, 맞추고, 조이고 드디어 물을 틀어본다. 쏴아아! 시원하게 물이 나온다. 장하다. 어깨춤을 춘다. 기고만장하다. 시험 100점 맞은 기분이다. 얼른 집에 가서 엄마한테 자랑해야지, 하는 심정으로 아내에게 전화한다. 나와! 물이 잘 나와! 유전 발견한 석유시추공이라도 된 기분.


아내가 잘했다고 퇴근 후 치킨에 맥주 한 잔 하자고 한다. 술 끊은 나는, 건강 생각하는 나는 제로콜라라고 정정해 준다. 자랑하느라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것들을 챙긴다. 꺼내 놓은 것을 다시 제자리에 둔다. 하나 둘 제자리에 갖다 놓고 연장 챙긴다. 이것으로 끝. 와우! 기분 너무 좋다. 이제 다른 것도 고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무럭무럭 생긴다.


식탁에 앉아 싱크대를 바라본다. 음! 수도꼭지가 반짝반짝 윤이 난다고 생각하는 찰나, 그 옆에 검은 물체가 눈에 띈다. 저게 뭐지? 다가가 본다. 어? 어디서 나온 거지? 불길한 생각이 든다. 설마, 어디서 빠뜨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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