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하는 자세

내맘대로 일기 22

by EAST

연말이다. 올해 2명이 정년으로 자리를 떠난다. 그중 한 명은 작년에 나랑 같은 조에서 근무했던 반장이다. 그때 같은 조 3명이서 1년 동안 재미있게 지냈다. 휴일 근무 때면 간식 만들어 먹고, 한 달에 한 번꼴로 주변 맛집 찾아다닐 정도로 돈독했다. 그러다 올해 내가 다른 조로 옮기면서 헤어지게 되었다.


요즘 미치겠다.

작년 같은 조에서 지낸 선임 P다. 교대 근무 들어온 내게 하소연한다. 나랑 죽이 잘 맞아 형, 아우하고 지내는 사이다. 소위 말년 병장인 반장이 일을 도통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퇴직 후엔 뭐 할까, 온통 그 생각뿐이라고. 그래서 자꾸 일이 샌다고. 그거 뒤치다꺼리하느라고 정신없다고.


하긴, 인수인계 후 서류를 보면 여기저기 슝슝 비어 있는 것들이 보인다. 다른 조라 가볍게 한숨 쉬며 미비된 부분 보충하면 되지만 같은 조 마음 착한 P의 뒷수습하는 바쁜 손길이 충분히 짐작된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빈번해진다는 것이다. 참다못한 P, 요즘에는 화까지 낼 정도다.


반장과는 알고 지낸 지 3년이다. 성격도 둥글둥글 무탈하다. 지역에서 오래 산 데다 여러 여가 활동을 즐겨 다방면으로 알고 지내는 사람도 많다. 공직 은퇴 후 이곳에 입사했기 때문에 꼬박 나오는 연금만으로도 풍족한 삶을 즐기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 그의 삶을 부러워했다. 나의 은퇴 후 삶도 저랬으면 좋겠다, 싶었다.


반장은 평소 다른 사람에게 피해 가는 행동을 하는 게 제일 싫다고 했다. 그런 그가 서서히 빈 틈이 생기는 것을 목격하면서 나는 조금 실망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런 내 마음이 더 굳혀진 결정적인 사건이 얼마 전에 있었다.


반장이 속한 조는 12월 31일 야간 근무였다. 정년 퇴직하는 당일이 야간 근무라니, 새해 첫날 아침까지 근무해야 하다니, 억울할 만도 하다 싶었다. 그런데, 반장이 그날 연차를 썼다. 정년 퇴직하는 당일에 야간 근무까지 할 수 없다며, 다음 날이 1월 1일 휴일이니까 누구라도 대근하기 쉽지 않겠냐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머리를 띵, 하고 맞은 것 같았다. 조그맣던 빈 틈이 강도 9의 지진이 온 땅처럼 쩍 하고 완전히 갈라졌다.


나는 생각한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란 12월 31일의 야간 근무를 야! 이것 또한 좋은 추억이 되겠구나,라고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라고. 또한 만약 나였다면 그렇게 받아들일 자세가 되었는지 묻는다. 앱솔루들리 예스라고 당당하게 말할 준비가 되어있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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