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일기 29
나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다. 또 즐겨 듣지도 않는다. 당연히 좋아하는 장르가 딱히 없다. 올드 팝이나 포크송이 어디서 흘러나오면 같이 따라 흥얼거릴 정도지, 일부러 찾아서 듣는 편이 아니다. 내 성격이 두루뭉술해서 노래 취향도 무색무취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뭐냐고 묻는다면 어, 그게, 음, 그러니까 말이지, 어려운 산수 숙제를 마주친 어린애처럼 곤란해진다.
그나마 노래를 자주 들을 때가 있다. 헬스장에서 운동할 때와 출·퇴근길 운전할 때다. 헬스장에서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비트 강하고 반복적인 EDM이나 피트니스 앤섬이라 불리는 강렬한 노래가 대부분이지만 간혹 최신 아이돌 노래도 들린다. 비트에 맞춰 운동하다가 아이돌 노래가 나오면 또 나름대로 맛깔스럽다.
그러다 어느 날, 영어 노래를 들었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후렴구에 엔, 엔, 엔을 반복적으로 부른 노래였다. 그러니까 끝이라는 말인데, 계속 듣다 보니 IMPRESSIVE(인상적이라, 음 이제 시작이구나)도 들리고, 돌연 OVER(벌써 끝장이야?)가 들리고, DON’T LEAVE(하지만 떠나지 마, 그렇지, 이렇게 쉽게는 아니지)가 들렸다. 사실 이것도 수십 번 들어서 겨우 알아낸 거다. 그렇다. 내 영어 실력은 형편없다. 하지만 귀 쫑긋 세우고 운동은 뒷전인 채 알아내려 무지 애쓴 결과다.
그런데, 이 노래 엄청 중독성 있다. 헤어지는 얘기인 것 같은데 이렇게 신나게 들려서야 원, 어쨌든 헬스장에 있으면 이 노래가 언제 나오나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그러다 출근길에 문득 생각이 났다. 차 안에서 유튜브 검색했다. END 쓰고(아! 영타는 어렵다), IMPRESSIVE(너무 길어, 그러니 인상적이지) 넣고 엔터. 어머나 세상에, 떡 하니 ROSE가 나온다. 어라! 내가 알고 있는 APT의 그녀? 아닌데, 분명 내 귀로는 미국 원어민 아이돌인쯤인 줄 알았는데, 설마. 재생해 본다. 맞다. 영락없이 그녀다. 볼륨을 높인다. 전자음의 도입부가 잔잔히 나온다. 점점 격렬해진다. 그러다 END END END.
헬스장에서 듣는 거랑 조용한 차 안에서 혼자 듣는 거랑 차원이 달랐다. 차 안이 온통 그녀의 END다. 출근하는 내내 반복해서 듣는다. 따라 흥얼거린다. 출근길 1시간이 순식간이다. 벌써 도착, 아쉽다.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TOXIC TILL THE END. 끝까지 중독 있다.
무색무취인 내 노래 취향에 한번 획을 쓱 그어볼까? 그것이 아이돌 노래면 또 어때? 병오년 새해, 그동안 반복적인 일상에서 벗어난 또 다른 세계, 미지의 세계에 한발 디뎌볼까? 슬슬 몸이 간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