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

내맘대로 일기 31

by EAST

집 뒤에 해발 145m의 낮은 산, 이름하여 팔달산이 있다. 태조 이성계가 그림으로 그려진 산을 보더니 음! 여기저기 뻥뻥, 사통팔달하니 앞으로는 팔달산으로 하거라 했다고 하신다. 그전에는 누가 보든 탑이네 해서 탑산으로 불렸는데, 말 한마디에 졸지에 이름이 바뀌었다. 누가 그랬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름 불러주니 꽃이 되고, 눈짓되는. 아! 내 말 한마디에 이름이 바뀌는 재주 없고 뭣도 없는 나는 오늘도 팔달산을 걷는다.


산길, 이길 저길 걷다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정상일 때도 있고, 낯선 곳으로 내려올 때도 있고, 오잉! 이 길이 아닌가 벼, 다시 오르락내리락 세월아 네월아 댕기기도 한다. 그래 딱 마주친 곳이 지석묘군이었다.


지석묘. 뭐지? 안내문을 읽는다. 다른 말로 고인돌이다. 아하! 청동기 시대. 고조선 무렵이다. 까마득하다. 그 오랜 세월 견뎌낸 것 치고는 고인돌 멀쩡하다. 모르고 봤으면 그냥 큰 돌이 있는가 보다 했을 성싶을 정도로 평범한 모양. 그러니 그곳엔 먼 조상이, 아마 힘센 족장쯤 되지 않았을까 싶은 이의 무덤이 덩그마니 놓여 있을 줄은 생각 못 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아니구. 고인돌의 주인은 어떻게 하루를 보냈을까. 양지바른 팔달산 좋은 자리에 눕기 전까지 그 사람은 무엇을 했을까? 남자 혹은 여자? 기껏해야 30 중반이었을 거라는 평균 수명의 시절. 어릴 때 삶은 어땠을까? 나처럼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아카시아 꽃 따먹고, 메뚜기나 잠자리 잡으며, 혹은 개울가에서 물고기 잡고 다니며 놀았을까? 하기 싫은 공부 성질내며 억지로 하다 또 깜빡 졸다가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 당했을까? 설마 전교 1등? 친구들이랑 싸우고 욕하고(욕이라면 어떤 걸까? 설마 개XX은 아닐 테구) 그러다 화해하고 잘 놀았겠지?


총총한 별 보며 미래를 그려봤을까? 첫 데이트의 짜릿함을, 손잡았을 때의 심장 떨림을, 첫 키스를, 흐흐 첫날 밤을, 어허! 때찌. 19금. 중간 생략. 결혼을 했을까? 자식을 낳았을까? 사냥하러 가다가 수원까지 내려온 백두산 호랑이 한 번 만났을까? 그 얘기 무용담처럼 평생 떠들었을까? 돈(사냥이겠지만) 벌러 다니는 게 힘들지 않았을까? 회사(부족이었겠지만) 내에 갈등은 없었을까? 재미있게 살다 갔을까? 행복한 삶이었을까? 소풍 잘 끝냈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부스럭 소리에 긴 생각을 멈춘다. 5,000년 전 그이의 큰 돌무덤, 발걸음이 괜히 무겁다. 삶이란 대체 무엇일까? 팔달산을 내려간다. 답 없는 물음에, 세상 짐 다 진 지게꾼인양 엄숙한 표정으로. 그러다 자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욕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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