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km

내맘대로 일기 43

by EAST

엄마를 병원에 모셔오기 위해 네 번 왔다 갔다 하는 거리다. 소요 시간 편도 2시간 30분. 거리와 시간에 압도되어 차일피일 미루다 민수 씨는 드디어 큰맘 먹고 병원 예약하고 오늘 새벽 일찍 길 나섰다. 병원 예약 시간은 오전 11시다. 부지런히 달리면 시골에는 오전 8시 도착한다. 도착하자마자 잠시 쉬고 바로 출발해야 진료 시간에 댈 수 있다. 어젯밤에 내려와서 자고 난 뒤 출발할 걸 그랬나, 잠시 후회한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 가속 페달을 꾹 힘주어 밟는다. 멀리 익숙한 산자락이 보인다.


600km.

출근 시간과 겹쳐 병원 예약 시간 맞춰 간신히 도착했다. 대기실은 꽉 찼다. 공기가 후끈하니 숨이 막힌다. 등에 땀이 난다. 진료 시간보다 30분이나 지났지만 좀처럼 부를 기색이 없다. 슬슬 부아가 난다. 괜히 마음 바삐 서둘러 왔다. 따질까 말까 속으로 고민하던 중 엄마 이름을 부른다.

깨끗하네요. 걱정할 것 없습니다.

속으로 야호, 하고 소리를 질렀다. 기쁨도 잠시. 내려가면 3시쯤. 머릿속으로 시간을 가늠한다. 하루 종일 굶었더니 배가 고프다. 참, 엄마도 굶었지. 엄마 좋아하는 도가니탕집으로 간다. 야야, 이 비싼기를. 자꾸 건져서 나한테 옮겨준다. 밥을 먹었더니 나른하다. 더블 샷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챙긴다.


400km.

마음이 바쁜지 속도가 빠르다. 옆 차로 화물차가 휙휙 뒤로 밀려난다. 커피는 바닥났는데도 습관적으로 손이 간다. 안 되겠다, 휴게소에 들른다. 커피 한 잔을 또 주문한다. 화장실 간 엄마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지팡이 짚고 서서히 걸어오는 등 굽은 엄마가 난쟁이 같이 작아 보인다.

시골에 도착했다. 눈이 침침하다. 민수 씨는 잠시 눈을 감고 방에 눕는다.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가 들린다. 긴 여정 힘들단 소리 없이 컴컴한 부엌에서 엄마는 행여 아들 깰까 봐 소리 죽여가며 움직인다. 먹먹하다. 민수 씨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게 싫어 일찌감치 서울로 떠났던 때를 떠올린다.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루 벌어먹고 살기 바쁜. 당장 내일 할 일이 많다. 서두르지 않으면 치인다. 후다닥 일어난다. 출발한다. 저녁 멕이지 못하고 보내는 아들이 안쓰러워 우야꼬, 우야꼬만 내뱉던 엄마를 남기고 차를 급하게 몬다.


200km.

짧은 겨울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있다. 캄캄해지기 전에 한 걸음이라도 더 가야 한다. 제한 속도를 훌쩍 넘긴다.


100km.

이제 반 남았다.

감각이 무뎌졌다. 밖은 캄캄하다. 앞 차 후미등을 보고 따라간다. 그런데 아까부터 앞 차가 이상하다. 중앙선을 넘었다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좌우로 왔다 갔다 아슬아슬하다. 브레이크 등이 자꾸 켜진다. 졸음운전이다. 앞 차와 간격을 벌린다. 뒷 차가 빵빵거린다. 상향등이 번쩍번쩍. 왜 그러지? 룸미러로 뒤를 쳐다본다. 호랑이 눈처럼 붉은빛이 집어삼킬 듯이 룸미러에 가득하다. 깜짝 놀란다. 헉! 숨을 삼킨다. 앞을 본다. 터널이다. 앞 차는 오간 데 없다. 중앙선이 정면에 있다. 어라! 핸들을 급히 꺾는다. 타이어가 비명을 지른다. 끼이이익! 쿵! 왼쪽 터널 벽을 받고 차는 솟구쳐 튕겨 나간다. 공중제비 돌 듯 서너 바퀴 회전하고는 지붕부터 먼저 떨어진다. 민수 씨는 데굴데굴 구르는 와중에 앞 차는 어디 갔지, 대체 무슨 일인지 의아스러운 표정이다. 아! 졸음 운전하던 차는 바로 나였구나,라는 사실이 선명한 핏빛만큼이나 명확하게 꽂힌다.

야야, 밥 묵으래이.

엄마의 목소리다. 민수 씨는 벌떡 일어난다. 시골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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