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내맘대로 일기 47

by EAST

시골 하면 할머니가 떠오른다. 무뚝뚝한 할머니는 장손인 나를 귀여워해 주셨다. 부모님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은 일 할머니한테 가면 통했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할무이, 저거 저거, 매달린다. 그러면 바지 어디선가 꼬깃꼬깃 접은 돈이 나왔다. 신기한 옷이었다.


시골. 그곳은 내 고향은 아니다. 아버지 고향이고, 대구에서 태어난 나는 시골에서 살지 않았다. 다만 다섯 살 때 서울로 이주하신 부모님이 정착할 동안 약 1년가량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 1년 동안의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들리는 얘기로는 천둥벌거숭이마냥 산으로 들로 뛰어다녔다는 것이다. 그때 3명이 그렇게 몰려다녔다고 하는데, 2명에 대한 기억도 물론 전혀 없다. 왜 그 시절 기억이 하나도 남겨지지 않았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 명절에 시골 가면, OO이가? 하이고 마 이제 노인 다 됐뿟따, 맨날 밥 달라 카더만. 하고 내 어릴 적을 기억하고 말씀하시는 동네 아지매들이 계신다.


삼총사들, 이른 아침부터 모여 메뚜기며, 가재, 개구리 잡으러 쏘다니다 배 고프면 아무 집이나 들어가 밥 주이소, 당당했단다. 그러면 그때 찬란한 새댁이었던 지금의 어르신들은 우리가 마냥 귀여워 고봉밥을 차려줬다고 한다. 1년 동안 그리 다니니 온 동네 소문이 자자. 50년 넘은 그때의 기억을 아직까지 말하고 있는 아지매들도 이제는 점점 희미해지는 과거사를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고 있다.


연푸른 굴뚝 연기 동네에 퍼지고, 어느 집 개가 울고, 저녁이 깔리면 시골은 금세 캄캄해진다. 방안의 얘기 소리가 도란도란 들리고, 마루에 앉아 검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면 눈물이 또르르 흐른다.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떠오르고, 달빛 손전등 삼아 마실 가던 고모 손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걸어가,라고 묻던 내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시골 가는 길은 소풍 가는 것처럼 설렌다. 아는 사람 이제 없고, 세배만 하는 데도 서너 시간 걸리던 설날 풍경 없어도 그냥 흐뭇하다. 세뱃돈 대신 내주시던 콩, 참깨 듬뿍 오꼬시와 살얼음 동동 떠있는 달달한 엿기름맛 식혜를 당시에는 싫어했는데 지금은 먹을 수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수구지심. 비록 나고 자란 고향은 아니지만 내 다섯 살의 DNA가 나를 시골로 이끈다. 아내에게 슬쩍 묻는다. 우리 늙어 시골 갈까? 혼자 가셔유. 추억은 혼자만 즐기는 것으로, 도시에서.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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