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제설 작업
겨울철 경비원의 일거리 중 대표적인 하나를 꼽자면 단연 제설 작업이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를 다 다녀와서 제설 작업하면 치를 떠는 경우가 많다. 치워도 치워도 끝없이 펑펑 내리던 눈을 한 번쯤 다 경험했을 테니 말이다. 지긋지긋하던 그 작업을 여기서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세게 흔들어 현실을 부정한다.
눈은 신기하게 한밤중이나 새벽녘에 오는 경우가 흔하다. 모두가 깊이 잠든 사이 하얗게 소복소복 쌓인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얀 풍경 앞에 잠시 넋을 놓는다.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어안이 벙벙하다. 곧 정신 차리고 꺄! 하고 비명 지르고 밖으로 달려 나가 눈 밭을 뒹군다. 눈싸움에 눈사람 만들고, 눈천사도 그리고 아주 신났다.
그 시각 경비원은 난리 났다. 비상이다. 잠깐잠깐 허리 펴고 무지막지하게 퍼붓는 눈을 바라보는 눈빛이 간절하다. 삽질하고 비질하고 돌아보면 어느새 또 수북이 쌓인 눈들. 폭설 예보에 미리 뿌려둔 염화칼슘. 처음에는 오! 효과 있네, 감탄하다가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에 그도 역시 속수무책. 결국 우비 입고 빗자루 들고 나선 지 벌써 세 시간째.
도로에는 사이렌 울리며 연신 제설차가 다니지만 그마저도 포기했는지 이제는 뜸하다. 큰 짐차는 평소라면 비탈길 축에도 끼지 못하는 본사 정문 앞 야트막한 오르막길에서 헛바퀴만 돌리고 있다. 트럭 기사 우리에게 오더니 염화칼슘 있음, 좀 달란다. 하지만 우리도 이미 다 쓰고 동이 난 터, 빗자루만 손에 쥐어줄밖에. 30여 분간의 악전고투, 트럭 기사는 포기한 채 차를 여기 두고 내일 아침에 다시 와도 되겠냐며 통사정했다. 정문 앞이라 아침 출근길 뒤엉킬 게 분명한데도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연락처 받고 보냈다.
서너 시간의 기나긴 제설 작업 끝에 회사 앞 진출입로는 간신히 차가 다닐 만큼 정리가 되었다. 하지만 차단기 지나 본사 안쪽으로는 손도 대지 못했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제설 작업으로 지친, 땀투성이가 된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보고 그제야 하하, 푸푸 하고 크게 웃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일을 다했다는 웃음이었다. 배가 고팠다. 컵라면 끓여 먹는데 꿀맛이었다. 머리는 땀에 젖어 이마에 딱 붙어 있었고, 더운 기운에 김이 무럭무럭 옷 밖으로 솟아나고 있었다.
2024년 11월 27일. 유례없는 폭설로 수도권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제시간에 출근하는 사람이 없었다. 교차로마다 엉킨 차들로 아비규환. 언덕길에는 뒷바퀴 굴림 고급차들이 쩔쩔매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그 사이로 사륜 SUV 약 올리듯 쓩 지나갔다. 사람들이 하나둘 차를 갓길에 세워놓고 지하철역으로 걸었다. 무리 지어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그 모습이 마치 전쟁 피난민 같았다. 습기 품은 무거운 눈으로 인해 수십 년 된 가로수들이 곳곳에 우지끈 넘어가 있었다. 살다 살다 이런 눈 처음이라는 사람들 목소리가 여기저기 흘러나왔다. 평소 같으면 야간 근무 후 오전 6시 30분 퇴근했을 텐데, 그날은 한바탕 소란이 끝난 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싶은 오전 10시경 퇴근했다. 50분이면 오는 길, 거의 2시간 걸려 가까스로 집에 도착했다. 길이 미끄러워 핸들을 너무 꽉 잡고 있어서인지 손아귀에 힘이 없어졌다. 오후 내내 곯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