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새벽 풍경
야간 근무할 때마다 새벽 풍경을 마주한다. 모두 깊이 잠든 새벽 창밖을 보고 있으면 경비실에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는다. 아득히 먼 옛날, 학생일 무렵, 밤새 공부하다 말고 문득 창밖을 바라보던 나의 모습이 순간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라며 기억을 되짚어 보다 피식 웃는다, 생각날 리 없잖은가. 감상에 푹 절은 오십 대 늙은 아저씨, 정신 차리셔, 경비실로 정신이 돌아온다.
새벽 풍경은 그 빛깔과 느낌이 계절마다 사뭇 다르다.
봄. 은밀한 새벽.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흐느적거림이 느껴진다. 춘심 동한 연인들의 가쁜 숨소리가 아련히 들리는 듯하다. 봄바람에 한들거리는 벚나무가 경비실 앞 서치 라이트 불빛에 더욱 요염하다. 팔랑팔랑 떨어지는 벚꽃잎의 궤적이 몽환적이다.
여름. 후드득. 밤새 공기가 끈적끈적, 후텁지근하더니 기어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쏴아아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비린내가 난다. 한낮에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떨어지는 빗줄기는 그렇지만 더위를 쫓아내지는 못한다. 요란한 소리에 비해 실속 없다. 부채질만 더 세게 한다.
가을. 낙엽이 바람에 사사삭 뒹군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기 시합하는 낙엽 뒹구는 소리는 새벽이라 우당탕탕 더 크다. 그 틈에 찌르르륵, 귀뚜라미 소리 구슬프다. 하품 쩍 크게 한 경비원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겨울. 저녁이 지나 새벽이 되더니 이윽고 눈이 한두 송이 떨어진다. 사브작 사브작. 어느새 지붕을 덮고, 아스팔트 위에 쌓인다. 점령군처럼 소리 없이 내리더니 온통 새하얗다. 이런, 치워야겠군, 동료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한도 끝도 없이 내리는 눈을 쳐다보고만 있을 뻔했다. 제설용 플라스틱 삽을 들고 나선다. 사방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온통 적막. 눈만 펑펑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