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일기

7. 로또 순례Ⅶ

by EAST

‘그날 시간 괜찮아?’ 총무직을 맡고 있는 동문회 한 기수 윗 선배다. 내가 경비원 일을 시작하면서 선배는 습관처럼 내 근무 일정을 묻는다. 가만있어 보자, 근무편성표를 살펴본다. 다행히, 그날 휴무라, '좋다’고 말한다. 코로나 이후로 어지간한 동문회는 산산조각 나고 이제 동문회는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중환자 같은 신세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 동문회는 살아남아 꾸준히 모이고 있다. 하긴 우리 동문회가 어떤 동문회던가. 고등학교, 대학교가 모두 같은 학교다. 엄청난 인연이다.


기수로 따지면 우리가 거의 중간뻘이다. 아쉬운 것은 간신히 유지되었으나 우리 기수 아래 녀석들이 코로나 기점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졸지에 우리 기수가 막내가 되어버렸다. 50 후반인데 막내다. 쩝. 여기도 고령화를 피할 수가 없다.


주로 모이는 장소는 사당역 일대. 동문회 회원 중 많은 사람들이 경기 남부권, 즉 과천, 안양, 군포, 수원 등지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회원들도 신기하게 4호선 라인 근방이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 회장 형이 과천에 산다.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 권력 남용이다. 흐흐. 사실 사당역 외에 뾰족한 대안이 없기는 하다. 송년회 때 과감하게 강북인 종로에서 한 번 만난 적 있다. 부작용이 컸다. 너무 멀어, 거기까지 어느 천 년에 가, 이 나이에 서서 가기 힘들어, 안 갈래. 송년회, 파투날 뻔했다. 백화점 상품권을 경품으로 걸고 나서야 겨우 진화됐다.


동문회비 걷은 게 많다고 했다. 요즘 자주 모이지 못하고, 모여도 그 수가 적어서 회비가 남아돈다 하여 회장 형이 결단을 내렸다. 이번 모임 때 왕창 먹자고 했다. 해서 이번 모임은 소고기는 아니더라도 고급 돼지고깃집을 잡았단다. 그래서인지 참석자가 10명 넘을 거라고 총무 형이 말한다. ‘꼭 와라’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모처럼만의 서울 나들이. 수원 집에서 사당역은 생각보다 멀지 않다. 집 바로 앞에 사당역 가는 광역버스가 있다. 길이 막히지 않으면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금요일 오후 6시 무렵. 사당역을 코 앞에 두고 남태령 고갯길은 퇴근 차량들로 아수라장이다. 그러나 광역버스는 옆 차선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남태령 내리막길 버스전용차로를 거침없이 내달린다. 꼼짝달싹 하지 않는 옆 차선 빨간 후미등들이 순식간에 시야 뒤로 사라진다.


사당역 도착. 목적지는 14번 출구에 있다. 사당역은 유동 인구가 엄청나게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로또 명당이 없다는 게 참 의아하다. 영등포역, 잠실역, 신도림역, 수원역 등 다른 역들은 역사 부근에 로또 명당들이 많은데 말이다. 물론 한두 번 정도 1등 당첨된 판매점은 있다. 사당역 쪽에 볼 일 보러 오면 사는 곳인데, 매번 사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명당이라고 불릴만한 짬은 아니란 뜻.


그래도 모처럼 왔으니 한번 들러본다. 사당역 5번 출입구 바로 앞에 있다. 일반 가게가 아니고, 가판이다. 1등 당첨 액자가 말 그대로 덕지덕지 아무렇게나 붙어 있다. 자세히 보니 로또 1등 당첨 2회, 연금복권 1등 1회, 즉석복권 1등 1회다. 나름 골고루 저력 있는 곳이다. 까짓것, 지갑을 꺼낸다. 애초에 동문회가 있다고 했을 때부터 이곳을 가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돌아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이쪽으로 온 것을 보면 말이다. 혹시 모르잖는가, 행운은 어디에도 깃들 수 있으니. 14번 출구로 총총히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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