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일기 14
입주 4년 차 된 아파트. 번쩍번쩍 윤기가 흐르던 시설들이 이제 빛바래고, 낡아갔다. 아파트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 시설도 그랬다. 헬스장 기구들도 마찬가지. 평소 아파트 내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불만의 글이 많이 올라왔다. 고장 난 채 방치된 기구들, 턱없이 부족한 기구들, 좁은 공간, 지저분한 실내 등등. 아무래도 가장 이용객이 많은 게 헬스장. 무려 1,700여 명이 이용한단다. 그렇다 보니 가장 민원 많은 곳이 역시 헬스장이다.
민원 중에서도 가장 많은 것은 운동기구 부족. 대표적인 게 스텝밀. 일명 천국의 계단이라고 불리는 기구다. 계단 오르는 기구인데, 트레드밀과 더불어 여자들에게 단연 인기 1순위. 그런데 달랑 1대뿐이다. 반면에 트레드밀은 20대. 너무 비대칭이다. 스텝밀을 타기 위해서는 맛집도 아닌데, 대기 번호를 걸어두어야 할 정도다. 스텝밀 옆에 붙어 있는 대기자 명단은 항상 빼곡하다. 궁여지책으로 개인당 사용 시간을 20분으로 못 박았다.
근력 운동 기구도 마찬가지. 상체 단련 기구들이 부족하다는 민원이 줄기차게 올라왔다. 그래서 운동하기 너무 단조롭다거나 사용하려면 많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스미스머신 제발 맘껏 하고 싶다고요, 젊은 남자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기구 근처를 맴돈다. 자리 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가다 서로 맞닥뜨리는 계면쩍은 모습이 오늘도 연출된다.
결국 부족한 기구를 들여온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다만, 좁은 공간과 부족한 예산 탓으로 살 수 있는 기구가 제한적이라고 했다. 임의로 정할 수는 없고, 수요 조사를 한 후 결정한다고 했다.
기류가 수상하다. 삼삼오오 모여 있다. 여자분들이다. 근력 운동 기구 쪽에 몰려 있는 남자들을 괜히 힐끔거린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묘한 분위기다. 슬쩍 귀를 쫑긋 세운다. 들릴 듯 말 듯, 천국의 계단이라는 단어가 간신히 안테나에 걸렸다. 그땐 몰랐다.
운동 기구 보충하느라 하루 문 닫은 헬스장이 다시 열었다. 이참에 청소까지 대대적으로 했는지 말끔했다. 두리번두리번. 어떤 운동 기구가 들어왔지? 잘 모르겠다. 그대로인 것 같다. 뭐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트레드밀에 올랐다. 어라, 이상하다. 트레드밀끼리의 간격이 촘촘해진 느낌. 다닥다닥 붙어 조금 답답한 느낌. 고개를 쭉 빼서 좌우를 둘러봤다. 좀처럼 찾지 못했다. 서너 번 그러던 차, 중간중간에 우뚝 솟은 스텝밀이 보였다. 아하! 트레드밀 중간에 스텝밀이 끼어들었던 것이다. 그제야 삼삼오오 모여 있던 여자분들 생각이 뇌리에 스치듯 팍 끼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