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를 보면서

내맘대로 일기 2

by EAST

나는 열정적인 사람이 아니다. 뭐 하나에 푹 빠지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스포츠도 없거니와 팬임을 스스로 자처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렇다고 독서라든가 서예 내지는 악기를 다루는 등 다른 취미를 딱히 가진 것도 없다. 한마디로 무색무취인 사람이다. 재미없다는 뜻이다.


예전 직장에서 야유회를 갔던 적이 있었다. 여러 놀이 중에서 지문을 제시하고 거기에 가장 잘 맞는 직원을 뽑는 코너가 있었다. 가령, 결혼하면 여자에게 가장 잘해줄 것 같은 남자 직원은? 이런 식으로 지문이 제시되면 거기에 가장 들어맞는다고 생각되는 직원을 뽑는 것이었다. 그중 가장 재미없을 것 같은 직원에 내가 뽑혔다.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 지문을 보았을 때 나는 내가 뽑힐 것이라 예상했었고,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가장 잘하나요? 혹은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가요?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딱히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직장 동료 중에 프로야구팬이 많다. 그래서 가을쯤 되면 화제는 온통 프로야구다. 사실 시즌 내내 그 얘기지만 임팩트가 강하지 않다. 하지만 가을야구라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특히 올해는 실로 오랜만에 가을야구에 진출한 한화 팬이 많아 분위기가 더 뜨겁다. 오죽했으면 평소 관심 없는 나까지도 궁금해할 정도였다. 4차전까지 1승 3패로 밀리고 있던 한화. 5차전. 백척간두에 선 한화. 여기서 밀리면 끝. 흥미진진하게 TV를 봤다. 난생처음으로 프로야구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결국 LG가 이겼다. 승리가 결정되는 순간 환화 팬이 아님에도 화가 났다. 내가 이 정도면 한화 팬인 직장 동료야 뻔했다.


그러나 다음 날 만난 직장 동료는 의외로 담담했다. 왜지? 물었다. 당연히 화가 났다고. 그러나 내년이 또 있지 않느냐, 더 잘하면 되지,라고 대답한다. 하! 이게 뭐지. 궁금해진다. 팬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하다. 너무 좋아하면 모든 게 용서되는 뭐 그런 거.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이가 실패해도 우리는 용서한다. 물론 처음에는 화가 날 수도 있고, 실망할 수도 있고, 때로는 체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감싼다. 위로해 주고, 다독여 주고, 희망을 주고, 용기를 준다. 그게 사랑이다.


한 번쯤 푹 빠져보기로 했다. 같이 웃고, 울고, 신나고, 화나고. 프로야구 보고 나서 한번 재미있게 맘껏 즐기고 싶어졌다. 속단은 금물. 한화 팬이란 건 아니다. 혹시 모르지. 원투 펀치. 폰세와 와이스가 남는다면, 은 너무 큰 욕심이구. 와이스라도 어떻게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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