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일기 7
오늘은 야간 근무. 저녁 9시 출근이다. 시간은 내 편이다. 펑펑 남는 시간 물 쓰듯 마구 흘려보낼까 싶어 무작정 집 나선다. 막상 나섰는데 정처 없으니 발길이 갈피를 못 잡는다. 그러던 차, 도서관이 떠올랐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따사롭다. 고즈넉한 산사에 온 듯한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사라락 책 넘기는 소리가 들릴 듯 조용한 열람실은 한가하니 쾌적했다. 서가에 꽂힌 무수한 책의 향기를 맡으면서 700에서 800, 900으로 마치 이 꽃 저 꽃 옮겨 다니는 나비처럼 누빈다. 음, 책에 취한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지식의 파도에 휩쓸려 정신이 혼미하다. 얼른 책 한 권 골라 자리에 앉아 마음을 진정시킨다.
갓 출간된 신간. 표지를 조심스럽게 넘긴다. 저자 소개. 여러 상을 받은 일본 작가. 베스트셀러 소설책도 썼다. 흥미롭다. 검색창 가서 책 있는지 확인. 딩동. 있단다. 이번엔 벌처럼 서가로 잽싸게 날아간다. 많이 빌린 티가 팍팍 나는, 손 많이 탄 빛바랜 낡은 책등. 검증 완료. 맛집 인정. 수거 완료. 마음에 든 신발 하나 장만한 느낌. 폭신폭신 구름 위를 걷는 듯 기분 좋다.
내친김에 옆 칸도 슬쩍 쳐다본다. 눈으로 훑는다. 온갖 책들이 대성의 노래 날 봐, 귀순처럼 날 봐 날 봐 지금 당장 날봐요, 노래 부른다. 프로듀스 101의 pick me처럼 pick me, pick me, pick me up 단체로 애원한다. 물리치기 힘들다. 몇 권 더 뽑는다. 어느새 7권. 하루 대출 한도다. 양손에 쇼핑백 가득 든 것 마냥 묵직하다.
큰일이다. 맨 손으로 왔다. 책 7권을 담을, 하다 못해 비닐 봉다리조차 없다. 집까지 걸어서 20분. 에라 모르겄다. 양손에 나눠 들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무겁다. 가냘픈 이두박근이 야속하다. 점점 팔이 저려온다. 오른손, 왼 손 바꿔가며 책을 옮기지만 3권, 4권 서로 바꿔가며 들어봐야 그게 그거.
단골 카페 옆을 지난다. 여기서 목이나 축이고 갈까, 시원한 물 한 잔이 간절하다. 아니다. 얼른 가자. 발길을 재촉한다. 낑낑. 속으로 멍청한 녀석 같으니라구. 사서 고생이군. 꾸짖고 있었다. 그때, 저기요. 뒤에서 부르는 소리. 카페 여주인이다. 이거, 라며 종이 쇼핑백을 내준다. 그새 봤던 모양이다. 내 눈이 반가움에 커진다. 그저 고맙다. 이게 뭐라고, 눈물이 살짝.
덕분에 조금 수월하게 집 도착. 소파 위에 쇼핑백을 툭 던졌다. 투둑, 책이 쏟아졌다. 7권. 미쳤어, 미쳤어. 2주 안에 다 읽어야 한다. 이틀에 한 권꼴이다. 취한 게 틀림없어. 아니고서야. 물건이면 반품이라도 하지. 한때 내 편이었던 시간이 저 멀리 안녕, 하며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