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내맘대로 일기 13

by EAST

상비약 사러 맘먹고 오늘 길 나서본다. 지난번 우연히 샀던 몸살감기약, 값도 싸고 먹어 보니 효과 좋았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제약사 제품에 비해 거의 40% 정도나 가격이 저렴했다. 왜지? 물어보니 제약사가 네임 밸류가 낮은 데다 유통 마진을 덜 붙이니 그렇다는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이름 없는 제약사라, 흠. 밑져야 본전 셈 치자, 했다. 헌데 효과 즉방. 한 번 먹고 몸살감기 똑 떨어졌다. 오호, 이 녀석 봐라. 그래 다시 사러 나선 길이다.


약국은 수원 화성의 남문(南門) 격인 팔달문 부근에 있다. 이곳은 시장이 많다. 팔달문시장, 못골종합시장, 영동시장, 지동시장, 미나리광시장. 무려 5개 시장이 서로 붙어 있다. 그 경계가 애매해서 걷다 보면 다른 시장 나오고, 뱅글 돌다 보면 또 다른 시장이다.


그중 가장 오래된 영동시장의 유래는 정조대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화성을 축조하고 나서 상가와 시장을 조성했고, 그때 성내시장, 성외시장이 생긴다. 해방 후 수원이 시로 승격하면서 성외시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게 영동시장 되시겄다.


우시장도 그때 생겼다. 백성 사랑이 지극하셨던 정조대왕. 농민들에게 종자와 소를 나눠서 경작을 장려했다. 그 소가 새끼를 쳐서 수가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우시장이 형성되었다. 때마침 한양이 도축을 엄격히 금하자(정조대왕의 큰 그림? 설마) 수원 우시장은 그 틈에 전국구로 성장, 3대 우시장이 되었다. 수원이 왕갈비로 유명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원 왕갈비, 맛있는데 가격이 어마무시.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귀하다는 건 함정. 그래 꿩 대신 닭 아닌가. 왕갈비통닭으로 퉁치자. 그 유명한 통닭거리가 바로 지척이다.


시장이 많으니 자연 사람들로 북적인다. 본래 목적은 약국이었으나 그건 핑계.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시장 구경에 신났다. 시장하면 또 먹거리. 맛집 또한 널렸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쳐, 왕갈비 뜯어먹는 소리. 머릿속에는 맛집 리스트가 주르르 펼쳐진다.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는 매운 어묵과 떡볶이가 거센 바람에 더욱 생각난다. 아니나 다를까 손님이 북적북적. 비집고 들어간다. 매운 소스 바르고, 어묵을 한입 잔뜩 베어문다. 찌리리, 매콤함이 혀를 먼저 감돌다, 콧구멍을 통해 화! 하니 빠져나간다. 꿀꺽 삼키자, 찬바람만 마시던 속이 뜨거움과 화끈함으로 휘리릭 뎁혀진다. 입에서는 캬! 감탄이 나오고, 손은 어느새 떡볶이 두 개를 꿰서 빨간 양념을 이리저리 묻히고 있다. 이게 동시에 이루어지다니, 나는 여태껏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사람인 줄 알았다.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가 펼쳐진다.


매콤함으로 추위를 혼쭐 냈으니 달콤함으로 추위를 녹일 차례다. 호떡집이 보인다. 역시 맛집답다. 왜 이리 사람이 많은 거야. 달짝지근한 기름 냄새가 골목 가득하다. 발 동동거리며 기다리다 받은 호떡 한 장. 냉큼 왕! 하고 문다. ‘뜨거우니......’ 주인장 말 끝나기도 전에 ‘앗! 뜨거라’ 입천장 다 뎄다. 그 와중에 손등에 떨어진 꿀물이 왜 이리 영롱한지, 쪽쪽 빨아먹는다.


그냥 가, 말어, 하다 기어이 바지락칼국수를 지나치지 못한다. 게다가 녹두전까지. 기름 둘러쓴 녹두전은 사각사각 씹히는 숙주나물의 식감까지 보태져 담백하고 고소하니 좋다. 여기저기 막걸리를 곁들인다. 군침 꼴깍 넘어간다. 하지만 금주 석 달째, 간신히 참는다. 바지락칼국수 시원한 국물을 먹는데 입천장이 따갑다. 이게 대수냐, 바닥까지, 바지락 하나 남김없이 후루룩 다 먹는다.


배가 남산만 하다. 휴! 숨 쉬기 힘들다. 엉거주춤 일어난다. 아까 약국에서 소화제를 샀어야 했나? 시장을 오지 말았어야 했나? 아니지 약을 사러 오지 말았어야지, 엄한 약국 타령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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