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내맘대로 일기 14

by EAST

오늘은 토요일. 로또를 사기 위해 긴 줄 끝에서 기다린 지 30여 분 만에 마침내 좁은 가게 안으로 입성, 주인장을 앞에 두고, 그 짧은 순간 얼마를 살지 고민하다 만 원을 내민다. 슝슝, 기계음이 들리고, 2장을 받아 들고 비좁은 가게를 나온다. 그새 줄이 더 길게 늘어서 있다. 이곳은 수원역 9번 출구를 바로 코 앞에 둔, 1등 당첨 10번이나 낸 로또 명당. 기다리는 줄은 족히 100m가 넘어 보인다.


매주 습관처럼 로또를 산다. 5,000원, 때론 만 원. 당첨에 대한 기대감은 설마, 그래도 혹시나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일확천금의 꿈.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더 강해진 느낌이다. 최저 시급보다 조금 더 많은 월급을 받으니 고달팠다. 내 삶을 갉아먹는 두둑한 월급을 포기한 대신 선택한 것이지만 막상 손에 쥔 쥐꼬리만 한 월급 앞에 허탈해진 표정은 감출 수가 없었다. 자연 미련이 따라온다. 조금만 더 참아볼 걸, 불쑥불쑥 드는 생각을 떨친다.


안다. 만일 계속 전(前) 회사에 남아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1억 넘는 연봉은 그만큼의 책임을 요구한다는 것을. 매주 월요일만 되면 마치 지옥에 끌려가듯 억지로 출근했다. 계속되는 회의의 결론은 항상 매출 향상. 어느새 나는 부하 직원을 닦달하는 나쁜 상사가 되었고, 매출로 직원을 평가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되고 말았다.


계속 떨어지는 매출. 나를 보면 슬금슬금 피하는 직원들. 설 곳이 없었다. 버틸 힘은 더더욱 남아 있지 않았다. 사표를 던진 날, 눈물이 났다. 힘들게 회사를 일구던 어려웠던 시절이 떠올랐다. 20년 세월. 오로지 회사를 위해서 일했다고 자부했는데, 돌이켜보니 일장춘몽 같았다. 마음이 무너지고 있었다.


계획 없이 그만두니 갈 곳이 없었다. 50 중반의 남자를 찾는 곳도 없었다. 물류센터는 받아줬다. 택배 상하차. 한 달 하니 몸무게가 5kg나 빠졌다. 저녁마다 다리에 쥐가 났다. 생전 처음 겪는 커다란 고통, 30분을 주물러도 쥐는 사라지지 않았다. 참다못해 잠자는 아내를 깨웠다. 아내는 말없이 내 등을 토닥여줬다.


6개월 다닌 물류센터를 그만두고 이리저리 단기 계약직을 전전했다. 반도체 부품 납품, 학교 김치 배달, 공공도서관 상호대차. 운전하는 일이다 보니 위험하다며 집에서 반대가 심했다. 결국 경비원 교육을 받고, 지금의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 다행인 것은 정년이 보장된다는 것.


생전 처음 하는 교대 근무. 출근 시간이 계속 바뀌고, 야간 근무까지 있어서 낯설었지만 마음은 편했다. 시간도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새 전 직장을 그만 둔지도 5년 차. 이젠 서서히 잊히고 좋은 기억들만 남아 있다.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로또는 그런 나를 위한 선물이다.


어떤 차를 살까? 또 색깔은? 남자들의 로망 포르셰, 색깔은 노랑이나 빨강이 좋겠다. 이왕이면 컨버터블로. 라이방 선글라스 끼고, 왼 손은 차창 밖으로 쭉 내밀고, 옆자리엔 애인, 같은 아내 태우고, 남태평양 해안가를 유유히 드라이브하는 장면을 오늘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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