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얼굴을 한 긴장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나에게 직접적인 폭력은 없었다.
하루 종일 학교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 돌아오면,
서로 마주칠 시간조차 거의 없었다.
집은 그저 잠만 자는 공간이 되었다.
학교는 피난처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공부와 경쟁의 장소였겠지만,
나에게는 단지 ‘살아남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교실의 소음과 친구들의 웃음소리 속에서도
나는 늘 마음 한구석이 얼어 있었다.
시끄럽게 떠드는 목소리,
누군가 책상을 세게 치는 소리나 문이 쾅 닫히는 소리만 나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저 평범한 학교의 하루였지만,
내게는 작은 소리 하나하나가 불안의 신호처럼 들렸다.
마치 언제든 그 ‘소리 뒤에’ 폭력이 따라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공부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몸은 교실에 있었지만, 마음은 늘 다른 곳을 경계하고 있었다.
어디에 있든 그 불안은 따라왔다.
소리가 들리는 한, 나는 완전히 편해질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은 더 이상 나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말수도 줄고, 싸움도 줄었다.
겉보기에는 평화로워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평화가 아니라 긴장 속의 정적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서로를 피하는 하루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커서 그런 걸까? 이제는 반항할 수 있다고 느꼈던 걸까?
어쩌면 그 사람은,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저체중에 깡 말랐고,
집에서 가장 작고 왜소한 아이였다.
그래서였을까.
가장 약한 나를 향해 그 화살이 늘 꽂혔다.
그 생각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하다.
나를 괴롭혔던 건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누군가를 지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던 비겁한 힘의 습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대상이 우연히,
아니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였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점점 감정이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웃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집 안에서는 가능한 한 ‘투명한 존재’로 남으려 했다.
그래야 평온이 유지되니까.
그 시절의 나는,
살아있지만 살아가는 느낌이 없었다.
단지 하루를 무사히 넘기기 위해 숨을 쉬고,
학교와 집 사이를 오가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조용했지만
내 안에서는 서서히 균열이 자라나고 있었다.
언젠가 터질 걸 알면서도,
그때는 그것이 폭풍의 전조였다는 걸 아직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