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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tain가얏고 Jun 15. 2024

아버지의 미소

“언니, 아빠한테 빨리 가봐야겠어.”


 동생의 다급한 외침에 부랴부랴 마을회관까지 한달음에 달렸다. 멀리 보이는 아버지는 아무래도 단단히 화가 난 모양새다.  

   

“아따, 형님 대체 뭣 때문에 그란다요?”

“사람을 무시해도 정도껏 혀. 내가 아주 못 듣는 줄 아는감?


억울하다는 이장님과 두 주먹 불끈 쥐고 노발대발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난감하다.     


“왜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저 인간이 내가 못 알아듣는다고 날 앞에 두고 막말을 하지 뭐냐?”

“그랬어요? 지금까지 잘 지내셨는데 오해 아녀요?”  

   

 격앙된 아버지를 진정시키는데 마음이 착잡하다. 돌이켜보면 누구에게든 돌아가고픈 시절이 있다. 잘생긴 외모에 성격 좋은 아버지는 젊어서 뭇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로 인해 어머니는 긴장과 질투심 속에 마음을 졸였다고 한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의 장남은 변변한 안전 장비도 없이 남의 농사를 지어야 했고, 농약에 중독되어 병원에 실려 가곤 했다.   

   

 특유의 부지런함과 눈물겨운 노력으로도 생활고를 감당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해외로까지 외화벌이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머나먼 타국에서 가족과 떨어져 고생스러웠을 시절이 아버지의 전성기라고 하는 걸 보면 아이러니하다. 귀국하여 많던 빚을 청산하고 육 남매를 가르친 아버지다.     

 

 어느 날, 심각한 표정의 아버지가 큰 병원에 가보고 싶다고 한다.

“한쪽 귀가 왜 아무런 소리도 안 들린다냐? 나머지 한쪽도 이상허다.”

“언제부터 그랬어요?”

“한참 됐지. 아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고 검사에 임했으나 결과는 참담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병을 방치한 것이 화근이었다. 병의 원인도 모르고 치료 방법도 없다는 사실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돌아오는 길 내내 아버지는 한마디의 말씀조차 없다.

    

 이후 보청기를 처방받은 아버지는 인정하고 싶지 않던 장애인 신분증도 신청해 발급받았다. 멀쩡하던 사람이 장애인으로 되는 건 순간이다. 언제부터였는지 높아만 가던 TV 소리, 불러도 대답 없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조금이라도 빨리 병원으로 모셨더라면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사람 좋기로 소문이 자자하던 아버지의 성격에 조금씩 변화가 일었다.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졌고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씀드려야 겨우 알아듣는 아버지는 묵묵히 고된 일만 하셨고 말수가 적어졌다. 세월이 흘러 우리 육 남매도 하나둘 부모가 되었고 아버지 또한 그만큼 더 노인이 되어갔다.  

   

 호기심 많은 외아들을 두고는 매번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린다. 하루는 남편이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 들고 귀가했다. 아들은 평소보다 많은 양의 드라이아이스를 보고 신이 났다. 생일 상차림에 한창인데 갑자기 ‘펑’ 하는 요란한 폭발음이 . 반쯤 정신이 나간 채 남편과 아이를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림과 동시에 깊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어? 왜 이러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내 귀가 이상해.”      


 물을 채운 페트병에 드라이아이스를 넣고 승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던 아들이 무심코 마개를 닫고 자리를 떴다. 그 사이 다량으로 발생한 이산화탄소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페트병이 폭발하면서 가장 가까이 있던 내가 고스란히 사고에 노출된 것이다. 주위는 온통 쏟아진 물과 페트병의 파편들이 사고의 심각성을 대변하고 있었다. 남편과 아들은 얼어붙은 듯 꼼짝없이 서로를 바라본다. 이윽고 사태를 파악한 남편이 두려움 가득한 내게 다가와 어깨를 토닥인다.     


 본인의 부주의한 행동의 결과에 놀란 아들, 걱정스러운 눈빛의 남편 그리고 겁에 질린 나, 이렇게 세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청력은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고 회복되었다. 다시 소리가 들림에 따라 감사함과 안도감이 들면서 순간 아버지 생각이 났다.    

 

‘오랜 세월 얼마나 갑갑하고 외로우셨을까?’

     

 이날의 사고는 잠시나마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던 가슴 아픈 장애 체험의 기억으로 남았다.    

  

 팔순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눈이 침침하다고 한다. 강한 자외선으로 눈이 시리다는 호소에 선글라스를 맞추려고 안경원에 들렀다. 시력 검사를 하던 안경사는 아버지를 모시고 안과에 가보라고 한다. 방문한 병원에서는 망막에 이상이 생겨 실명의 우려가 있다는 소견이다. 정기적인 검진으로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황반변성이란 병이 진행 중인 것이다. 당황해 눈치를 살피는 나와 달리 이번에는 의외로 담담한 표정의 아버지다.      


 병원 의자에 한참을 앉아계시더니 여행을 가자고 한다. 당신께서 아직 볼 수 있을 때 한 곳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으신 것 같다. 이제 굽은 허리로는 짧은 거리의 이동도 힘겹다. 하지만 젊어서 다른 세계를 경험한 아버지는 해외여행을 꿈꾼다. 아버지의 마음 따라 우리 육 남매의 마음 또한 급해진다.   

   

“7월에 제주도로 예약했어요. 해외는 겨울에 가요. 그러려면 체력을 키우셔야 해요.”

“근디 내가 어디 걸어 다닐 수나 있겄냐? 여행지서 내가 젤 꼬부라지고 늙었더라.”

“아빠를 업고서라도 가면 되죠.”

“내가 내 발로 다녀야지.”

아버지는 머쓱한 듯 손사래를 친다.     


“우리 여행이 언제라고 그랬지? 요샌 금방 듣고도 돌아서면 까먹는다니께.”

“7월 말이요.”

“아, 그랬나?”

자꾸 잊어버린다며 재차 묻는 아버지가 이내 만족스러운 얼굴로 환하게 웃는다.

     

“귀 어둡고 눈이 좀 안 보이면 어때요? 옆에 오래만 계세요.”

“...”

대답 없는 아버지는 입가에 엷은 미소만을 머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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