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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tain가얏고 Jun 11. 2024

비상탈출구

“이것이 말로만 듣던 그 비즈니스석이냐?”

“내리 딸만 낳는다고 속상해하더니만, 늙어서는 호강하지요?”

“다음에는 더 좋은 비행기로 예약할게요”

“근디 허리도 다 꼬부라지고 늙어서 또 갈 수나 있겄냐?”

“에이, 아빠는 아직 청춘이에요.”

우쭐한 표정의 어머니와 흐뭇한 미소의 아버지 그리고 깔깔대며 웃는 나까지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다.     


“엄마, 배고파요. 밥 언제 먹어요?”

“엄마?”

어디선가 들리는 귀 익은 밥 달라는 소리에 퍼뜩 눈이 떠진다. 

‘아! 꿈이었구나.’

5월의 어버이날 여행을 고민하다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작년 이맘때 셋째네 집에 들른 아버지 말씀이다. 

“나도 해외여행 한번 가보고 싶은데 같이 가자.”

평소 조용하고 말수 적은 아버지는 좀처럼 자식들 앞에 속마음을 꺼내 보이지 않기에 흘려들을 수가 없다. 

    

 한편 방학이면 늘 해외에 나가는 셋째에게 하는 어머니 말씀이다. 

“너만 다니지 말고 나도 좀 데리고 가라.”

그런데도 셋째와 연락이 닿지 않으면 그 즉시 확인하는 어머니다.

“셋째는 또 해외 나갔냐?”  

   

 6남매를 키우며 온갖 고난과 희생을 감내한 부모님이기에 이렇듯 속내를 비치는 모습은 낯설다. 먹을 것이 있어도 자식이 우선이고 본인의 안위보다는 자녀를 걱정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성인이 된 지금에도 당연시하고 있음이다.


“아빠 어느 나라에 갈까요?”

“난 아무 데나 다 좋다.” 

“그래도 특별히 가보고 싶은 곳은요?” 

“사우디는 너무 멀지?”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는 뜨거운 사막만큼이나 열정적이던 30대의 아버지가 젊음을 고스란히 불살랐던 나라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후 아버지는 홀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물려받은 게 빚뿐이던 아버지가 마지막 탈출구로 해외 파견 근로를 선택한 것이다. 한글을 익혀 편지를 읽을 수 있게 된 우리는 테두리가 알록달록한 항공우편이 마냥 신기하다. 아버지가 보낸 편지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아내와 함께하지 못하는 미안함이 묻어 있다. 편지에 동봉된 사진 속의 아버지는 웃고 있고, 아버지 모습 뒤로 배경이 된 가족사진에서는 내가 웃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외로웠을 아버지가 그 시절을, 그리고 아버지의 젊음을 다시 찾아보고 싶은 심경이었을까? 하지만 아버지의 현재 여건을 고려하면 너무도 먼 나라다. 여러 번의 교통사고와 막노동으로 입원과 수술을 반복한 아버지의 허리는 딱 반으로 접혔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여든을 바라보는 노인의 첫 해외여행으로는 역시 무리라는 결론이다.      


“아빠 사우디는 멀어서 힘들어요. 다른 나라는요? ”

“음, 그럼 베트남도 괜찮고….”

고민 끝에 베트남을 네 자매와 부모님의 첫 해외 여행지로 결정하였다.     

 “아빠 그럼 내려가셔서 여권부터 만들고 여권이 나오면 전화하세요.”


 다음날 바로 시골에 내려간 부모님으로부터 전화다. 

“여권 사진이 이렇게 비싸다냐?” 

“벌써 사진까지 찍으셨어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어차피 할 거.”

 멋쩍은지 서둘러 끊는 수화기 너머로 멀어지는 부모님의 웃음소리에 덩달아 기분이 좋다.     


 긴 기다림 끝에 우리 일행은 드디어 인천공항을 향해 출발하고 있다. 남편의 자긍심인 인천대교를 건너 공항으로 가는 내내 들뜬 부모님을 뵈니 마음이 뿌듯하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베트남까지는 5시간 이상의 비행이다. 동생은 비교적 공간이 넓은 비상탈출구 쪽으로 부모님의 좌석을 배정해 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그러나 위급상황 대처 규정상 노인들이 앉을 수 없는 좌석 또한 그 자리다.    

 

 제주도는 비행시간이 짧아 아쉽다는 부모님이다. 그런데 비행이 세 시간을 넘기면서 부모님의 안색이 급속도로 변한다. 이윽고 어머니는‘해외여행도 할 게 못 되는구나. 가까운 제주도나 한 번 더 갈 것을… 두 번은 못 가겠네.’라는 혼잣말을 하기까지 이르렀다.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비로소 똑바로 펴지 못하는 아버지의 무릎과 퉁퉁 부어 운동화조차 신을 수 없게 된 어머니의 발이 눈에 들어온다. 그제야 노인들은 일반석이 힘들다고 하던 직장 동료의 충고가 뇌리를 스친다. 어느새 부모님은 비상탈출구 좌석에도 앉을 수 없는 노인이 된 것이다. 내게는 우상이며 멋진 남성의 표본이던 아버지가 이제는 귀도 어둡고 기억력도 떨어져 걱정인데, 시력마저 실명을 걱정해야 하는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행여 우리에게 부담이 될까 통증을 참는 모습에서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짊어졌을 부모님의 삶의 무게와 고단함이 보인다. 아버지의 굽은 등이 유난히 힘들어 보여 애달프다. 평지도 걷기가 힘들다더니 악착같이 티톱섬 전망대를 오르는 아버지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버지가 낸 길을 네 자매와 어머니까지 뒤따른다. 6남매를 최선을 다해 키워낸 부모님에게 존경심이 절로 들어 다시금 우러러보게 된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하롱베이의 비경과 노 젓는 사공의 토속 민요까지, 이국적인 분위기에 흠뻑 빠져든 어머니가 이내 목청을 가다듬고는 뱃사공의 노래에 화답한다. 장단을 맞추며 흥에 겨워하던 어머니의 노랫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울린다. 

    

 일행에게 딸 자랑을 하는 부모님 앞에 오히려 미처 배려하지 못하고 편히 모시지 못한 무능함과 맞닥뜨리고는 비행시간 내내 마음이 불편하였다. 비상탈출구 좌석에서 다리라도 편하게 뻗을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슬하에 1남 5녀를 두고 하루도 편한 잠을 잘 수 없었던 부모님의 인생이 내내 불편했던 비행기 좌석과 묘하게 닮았다.    

  

  2017년 12월 31일부터 4박 5일간의 빡빡한 여정이었지만 낙오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한 부모님께 감사하다. 힘겨웠던 묵은 한 해를 비행기에서 모두 털어내고 새해를 맞이한 특별했던 여행이다. 우리의 인생도 모든 걸 새로이 세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며칠 전 어머니의 말씀이다.

“아버지가 여행이 또 가고 싶단다. 아빠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다녀봐야지. 죽으면 다 소용없다더라. 꼭 해외가 아녀도 괜찮으니 제주도라도 한 번 더 가자. 나야 비행기가 무섭다만, 네 아빠가 저리 좋아하니 나라도 같이 가야지 별 수 있냐?”

“…?”     

‘이건 처음부터 여행을 좋아하는 어머니의 큰 그림이었나?’     


 어머니를 배웅하러 터미널에 서 있다. 창밖의 딸을 향해 자꾸만 들어가라는 손짓을 한다. 곧이어 차량이 출발한다. 멀어지는 차 뒤꽁무니를 아쉽게 바라본다. 발걸음을 옮기는데 자꾸만 어머니의 노랫가락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따라 읊조린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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