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뱀장어잡이
아버지들은 금강에서 뱀장어를 잡는다. 가난한 시골에서 실뱀장어는 마을의 주된 수입원이다. 80년대 일본으로 수출하던 민물 뱀장어 치어는 비싸면 마리당 거의 200원 가까이 받을 수 있다. 농사일보다 큰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일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장어잡이에 나섰다. 아이의 아버지도 낮에는 논밭으로 그리고 밤에는 강으로 출근한다.
잠이 모자란 아빠가 토막잠을 자고 다시 논에 나가기를 며칠째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던 아빠의 말수가 점점 줄었다. 조용한 집안 따분해진 아이가 새벽녘에 들어와 곤한 잠을 자는 아빠 머리맡에 앉는다. 이제나저제나 아빠 잠이 깨기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이 더디 흐른다. 방안을 서성이다 기다림에 지친 아이가 방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어젯밤에 아빠가 잡았을 뱀장어 생각이 난다.
실뱀장어를 잡으면 한 마리 한 마리를 광 한가운데 널찍한 붉은 벽돌색 대야에 담는다. 간밤에 아빠가 잡아서인지 오늘따라 유독 많아 보인다. 벌레에 기겁하는 아이지만 뱀장어 치어에는 이미 익숙하다. 어찌 보면 까맣고 작은 두 개의 눈이 귀엽기까지 하다.
하지만 오늘만은 심통이 난다. 뱀장어 새끼들은 한쪽으로 몰려 무리를 지어 움직이고 있다. 발끝으로 대야를 한 번 '쿵' 찼다. 난데없는 충격에 놀란 뱀장어가 흩어졌다가 다시 뭉친다. 깔깔거리던 아이가 한 번 더 세게 찼다. 이번에도 화들짝 놀란 뱀장어가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한다. 이제야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 같다. 행여 아빠한테 들킬까 광문을 살짝 닫고 빠져나왔다.
따로 모아 둔 뱀장어는 주기적으로 중간 상인이 와서 사 간다. 뱀장어를 뜰채로 뜨면 막 삶아 건져낸 움직이는 냉면의 면발 같다.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에 아빠가 나왔다. 오늘이 마침 뱀장어를 가지러 오는 날이란다. 저울을 꺼내든 아저씨가 무게를 재고는 부모님과 한참을 흥정한다.
기분 좋은 얼굴을 한 엄마가 그날의 매상을 달력에 기록한다. 연필심에 침까지 묻혀 가며 정성껏 남편의 결과물을 적는다. 아이는 엄마 옆에 나란히 턱받침을 하고 엎드렸다.
‘하나, 둘, 셋.’ 하고 뒤에 붙은 ‘0’의 개수를 세는데 1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아빠의 피땀과 맞바꾼 것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쭐해진 아이가 마음속으로 외친다.
‘우리 집은 부자다. 부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