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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tain가얏고 Jun 07. 2024

어른을 위한 동화(별을 닮은 아이)

나 잡아 봐라

 

 나른한 오후 점심까지 먹으니 눈꺼풀이 무겁다. 앞산에서는 꿩꿩, 구구 구구구. 여느 때처럼 꿩이며 산비둘기가 한낮 자장가를 구성지게 부른다. 꾸벅꾸벅 졸다가 커다란 망치 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아휴, 깜짝이야. 뭐지?”

“아빠~~~”

“꽝 꽝 꽝”

“아빠, 어딨어?”    

 

 선잠에서 깬 아이가 아빠를 찾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다. 작은 발에 엄마 슬리퍼를 질질 끌며 아빠를 찾아 나섰다. 집 밖 양지바른 대문 앞에서 아빠를 발견한다. 베이지색 야구 모자에 청바지를 입은 아빠가 손에 여러 종류의 연장을 들고 분주히 움직인다. 아빠 오른쪽 귀 뒤로는 기다란 연필이 꽂혀서 떨어지지 않는다.     


“아빠, 뭐 해?”

“배 만들어.”

“우와~! 이 배 아빠가 만들었어? 이거 물에도 떠?”

“배니까 당연히 뜨지.”   

  

“그럼 나도 태워주세요.”     

평소와 달리 존댓말을 하며 얌전해진 딸을 보고 찡긋 웃는 아빠다.     


‘우리 아빠는 대체 못하는 게 뭐야?’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저만치 가 쪼그리고 앉는다. 뚝딱뚝딱 한참을 배와 씨름하던 아빠가 드디어 마무리 작업에 들어간다. 곧바로 광에서 하늘을 닮은 색 페인트를 꺼내왔다. 뚜껑을 열더니 칠 붓에 물감을 듬뿍 묻히고는 힘차게 색칠을 한다. 페인트칠에 몰입한 아빠 따라 아이의 표정마저 진지하다. 섬세한 아빠의 손끝에서 탄생한 배가 파란 옷으로 단장하니 더욱 근사하다.

      

“아빠? 이 배 이름이 뭐야?”

“글쎄, 우리 딸이 생각해 봐.”    

 

‘뭐로 하지?’

‘내 이름으로 할까?’

‘그러면 너무 별론데.’     


 턱을 괴고 곰곰 생각해 봐도 근사한 이름이 떠오르질 않는다. 결국 아이는 ‘파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파랑이의 손은 긴 장대로 만들었다. 아빠가 귀신이 나온다는 대나무 숲에 가서 하나 베어온 게 분명하다. 건너편 숲에 무성한 대나무는 잔바람에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세찬 바람에는 이파리를 마구 흔들며 소리를 낸다. ‘휘휘’ ‘스르르 스르르’ 스산한 소리를 내는 것이 아무래도 수상쩍다. 확실히 숲 한가운데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게 틀림없다.   

   

 하필 엄마 심부름이다. 재 넘어 고모네 집에 가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지나쳐야 하는 대숲이 바로 지름길이다. 돌아서 가기엔 한참이나 멀다. 고민하던 아이가 지름길을 택했다.    

  

 숲에 가까울수록 벌렁벌렁 나대기 시작한 심장 소리가 점점 커진다. 당장에라도 귀신이 튀어나와 어깨를 붙잡을 것만 같다. 머릿속에서 지우려 할수록 자꾸만 떠오르는 사촌이 들려준 화장실 귀신 이야기다.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

“흐흐흐 어딜 도망가, 거기 서!”     


 아이가 숨을 참은 채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한다. 뒤돌면 소복을 입은 귀신이 정말 따라오고만 있을 것 같아 모골이 송연하다.   

  

“네 아빠는 도대체가 겁이 없다.”

평소 엄마의 입버릇 같던 푸념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우리 아빠는 아주 용감해!’     


 단숨에 대숲을 지나고 저 멀리 고모 집이 보인다. 이제야 허리를 구부정하니 양손을 무릎 위로 짚고는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거칠게 몰아쉰다. 이윽고 안도의 한숨과 함께 돌아서서 뒤를 살핀다.     


‘후유’

‘메롱, 나 잡아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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