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산포도
“어? 뭐지?”
“뭐긴, 산포도지.”
“우와!”
입안 가득 달콤함이 퍼진다. 처음 맛본 산포도에 아이는 연신 신이 났다. 아빠가 산에 갔다가 발견한 산머루다. 보통 포도보다 송이가 작고 귀여운 포도다. 신맛이 나는 걸 유독 싫어하지만 이건 뜰 안의 그것과 다르다.
산 아래 외딴집 주위로 부모님이 심어 놓은 각종 과실수가 자라고 있다. 밭에 나간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멀다. 방금 아침을 먹었는데도 자꾸만 달달한 알사탕 생각이 난다. 양손을 뒤로 뒷짐을 지고 앞마당에 나가 주위를 살핀다.
해마다 잊지 않고 열리는 마당의 탐스러운 진보라색 자두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무척이나 먹음직스러워 보여도 막상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의 즐거움은 찰나일 뿐, 과육 뒤 껍질의 시큼함을 복병으로 남긴다. 작년에 맛보았던 새콤함이 떠올라 금세 침이 고인다.
‘저번보다 잘 익은 것 같은데... 분명 달콤할 거야.’
속는 셈 치고 다시 손을 뻗어 보지만 열매까지 닿기엔 어림도 없다. 작년보다 부쩍 높이 자란 나무는 아이의 성장보다 빨랐나 보다. 폴짝폴짝 뛰어올라 보지만 작은 키로는 역시나 무리다. 마침 엄마가 빨랫줄 중간에 받쳐 놓은 바지랑대가 보인다.
쪼르르 달려가 들고 오는데 장대기가 키를 훌쩍 넘는다. 먹겠다는 생각만으로도 힘이 장사가 된다. 목이 뻐근할 무렵 드디어 자두가 툭툭 떨어진다. 얼른 주워 들고 마당 한쪽 우물가로 달려갔다. 긴 두레박을 우물 안으로 힘차게 던지더니 물을 담아 퍼 올리는 손길이 바쁘다. 조물조물 작은 손으로 꼼꼼히 씻어 한 입 베어 문다. 역시나 실한 생김새에 또 당했다.
‘으으, 시다 시어.’
‘쳇, 난 처음부터 먹기 싫었어.’
자두에 질세라 반대쪽 한 그루의 석류나무도 매해 임무를 게을리하는 법이 없다. 터질 듯 알알이 씨알 좋은 열매를 한껏 뽐낸다. 다행히 석류나무 열매는 아이 눈높이에 있다. 앞부리에 힘을 실어 까치발을 하고 열매를 비틀어 움켜쥔다. 여러 번 빙빙 돌려 하나를 겨우 손에 넣었다. 쩍 벌어진 석류를 힘주어 반으로 쪼갠다. 하얀 막을 살짝 걷어 내니 붉은 석류 알들이 엄마 한복의 브로치처럼 햇빛에 반짝인다. 한 알 한 알 터질까, 조심조심 떼어낸다. 손안에 가득 모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아이코, 시어.’
얼굴을 찡그린 아이가 바로 뱉어내고 중얼거린다.
‘역시 아빠 산포도가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