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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tain가얏고 Jun 03. 2024

어른을 위한 동화(별을 닮은 아이)

저수지에서 생긴 일

 


 무더위가 며칠째 기승을 부린다. 언덕 너머 마을 저수지로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사내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물속으로 풍덩풍덩 뛰어든다. 둑 위로는 여자아이가 보이는데, 양손으로 턱을 받치고 쭈그려 앉은 것이 어지간히 부러운 모양새다. 한여름 햇볕은 유난히 아이의 정수리를 향해 따갑게 달려든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실눈을 뜨고 구경만 하던 아이가 급기야 벌떡 일어섰다. 둑을 타고 쪼르르 내려가더니 물 가장자리에 살짝 발을 넣어본다. 차갑지 않은 딱 적당한 온도의 물이 마음에 든다. 쭈뼛쭈뼛 주위를 살피며 주저하다가 반바지를 허벅지 위로 꼼꼼히 걷었다. 물놀이의 유혹에 넘어간 아이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간다. 미지근한 물에 끈적한 땀이 씻긴다. 

    

‘괜히 겁을 먹었잖아.’ 

    

 금세 기분이 좋아진 아이에게 물은 더 이상 두려운 대상이 아니다.   

  

‘이참에 수영이나 배워 볼까?’    


 얼굴을 수면 위로 내밀고 바닥을 걷는데 마치 수영을 하는 기분이다. 빠르게 뛰려는데 꿈속에서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깊은 물에서도 문제가 없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 점점 더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아차 하는 순간 그만 발이 바닥에 닿지 않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필 깊은 물웅덩이 쪽으로 발을 옮겼다. 손을 허우적거리는데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다. 물 밖 아이들은 여기저기 시끄럽게 떠들고 여전히 즐거운 비명을 내지른다. 하지만 아이만이 그대로 수면 아래로 꼬르륵 가라앉는다. 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다.      


‘구해주세요.’

‘제발 누구든 나를 좀 꺼내 주라고.’

‘나를 좀 봐.’

     

 아이는 소리칠 수 없지만 간절한 눈빛이다. 몇 번을 버둥거리다가 다시 떠오르는데 아른아른 빨간색 옷을 입은 탄탄한 근육질의 다리가 보인다. 있는 힘껏 잡아당기니 옷이 벗겨지면서 뽀얀 엉덩이 살이 드러났다. 옷을 주섬주섬 올리고 뒤돌아선 얼굴에선 황당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눈이 마주친 아이가 시선을 홱하니 돌리고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뗀다.   

   

‘왜 하필 그 오빠람?’

‘그래도 앞쪽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야.’

     

겨우 물 밖으로 기어 나온 아이가 허둥지둥 재를 넘어 집으로 도망친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움 때문인지 뜨거운 태양 탓인지 모르겠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잖아.’

‘아빠한테는 비밀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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