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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tain가얏고 Dec 27. 2023

잠버릇이 닮은 가족

 잠 못 이루는 밤


‘아이쿠, 무거워. 대체 누구 다리지?’


 한밤중 얼굴을 더듬더듬 다리의 주인을 찾는다. 수염이 까끌까끌하면 남편의 다리, 매끈하고 보드라우면 아들이다. 통통한 볼살인 것이 하나뿐인 아들이다. 살포시 들어 내리고는 베개만 들고 옆 방으로 향한다.

      

‘아, 갑갑해.’ 

어찌 된 영문인지 숨을 쉴 수가 없다. 이번엔 쉰을 넘긴 남편이 목에 헤드록을 거는 중이다. 슬그머니 빠져나오려는데 더 세게 휘감는다. 토닥여 재우고는 잽싸게 다른 방으로 옮긴다. 거듭 잠을 청해 보지만 그럴수록 멀어지고 달아나는 것이 밀당의 고수 같다. 

    

 잔뜩 웅크린 채 눈만 감고 있는데 ‘덜컹’ 문이 열린다. 여느 때처럼 성큼성큼 냉장고로 다가가 물을 마신다. 잠결에도 혼자인 것을 바로 알아채는 아들이다. 엄마를 찾아 비몽사몽 ‘퍽’하고는 옆에 쓰러져 눕는다.


‘그래, 항복이다. 항복!’     

 

 매일같이 반복인 일과지만 적응이 힘든 우리 가족의 못 말리는 잠버릇이다. 아들이 덩치가 커지면서는 부쩍 힘겹다.   

       

“언니, 왜 그렇게 자다 말고 벌떡벌떡 일어나? 정말 무섭다.”

“내가?”

“응, 그러고는 앉아서 잠을 자네. 누우라고 하면 그제야 누워서 잔다니깐. 한두 번도 아니고 정말 힘들다.”


 동생을 통해 처음 알았다. 본인도 모르는 잠버릇이 시작된 시점을 곰곰 생각해 본다. 떠올리고 싶지 않아 일부러 외면하고자 했던 기억이다.     

     

 때는 시간을 거슬러 1990년대 중반 추운 겨울이다. 유난히 눈이 많던 해, 그날도 눈이 내린다. 심술궂은 먹구름은 시골 어린 처자의 맘을 유혹하기로 작정이라도 했는지 밤새워 함박눈을 뿌려댔다. 새하얀 눈꽃이 탐스럽게 핀 아름다운 설경에 이른 새벽부터 안달이 난 k다. 유달리 겨울을, 특히 수북이 쌓인 눈에 발자국을 내기 좋아하는 k가 어머니의 걱정을 뒤로하고 집을 나선다. 아침 햇살 아래 눈 덮인 나무와 집들이 뽀얀 솜이불을 덮은 것처럼 따사롭고 포근하다. 차창 밖 풍경을 보니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뿐이다.     

 

 그러나 한겨울 짧은 해는 롤러코스터라도 탄 것처럼 빠르게 지난다. 친구와의 즐거움은 한때 날이 금세 저문다.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렀지만 이미 깜깜한 어둠 속이다. 익숙한 시골길 아무런 생각 없이 차에서 내려 논길을 걷는데 느닷없이 들리는 음산한 목소리다.    

  

“움직이지 마. 이거 칼이야. 움직이면 죽인다.”

“...”     


‘아! 이게 무슨 일이람? 엄마가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어머니의 짧은 경고가 뇌리를 스친다.  

    

“눈 내리고 비 많이 오는 날은 밖에 나돌아다니는 거 아니다.”

“엄마, 난 그런 날이 좋아요.”

“나쁜 놈들이 꼭 그런 날을 고르는 거야.”   

  

‘이놈은 대체 어디서부터 따라온 거지?’

‘이 바보야 위험에 처한 것도 모르고 너 뭐 한 거니?’


어머니의 충고를 흘려들은 자신을 책망해 보지만, 한심함과 바보스러움에 칼끝이 더욱 서늘하다.      

“있는 거 다 내놔. 빨리 지갑 꺼내.”     


 후회도 잠시 후들거리는 두 손은 지갑을 열고 있다. 하지만 들어있는 건 해맑게 웃고 있는 k의 사진과 천 원짜리가 달랑 두세 장뿐이다. 강도는 그마저도 주섬주섬 주머니에 구겨 넣더니 무슨 이유에서인지 k의 사진까지 챙긴다. 그러고도 목을 놓아주지 않는다.  

   

“계속 걸어.”

“집이 어느 쪽이지?”     


 갈림길에 선 k는 집과는 반대쪽을 가리킨다. 덜덜 떨리는 k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은 친구 집이다. 그러자 강도는 k의 집 쪽으로 방향을 튼다. 오후 8시면 도시에서는 한참일 시각이나 한적한 시골의 겨울은 오밤중이다. 요행히 승용차 한 대가 건너편 도로로 들어오고 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강도가 k를 끌고 도로 아래 도랑으로 내려가 숨는다. 차가 사라졌음을 확인한 후에야 목을 놓아준다.  

   

‘딱딱 따딱 딲딱딱 따딱’

 몰려드는 공포와 추위로 이가 서로 부딪친다. 음이 리듬을 타는데 겨울밤 무거운 적막을 뚫고 유난히도 크다. k는 인간의 치아로 이렇게까지나 희한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랍다. 그런데 그 소리를 내는 사람이 k 자신이라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다. 억지로 입 주위 근육에 힘을 줄수록 더 크고 둔탁한 소리가 난다.   

   

 분명 어려서부터 뛰놀며 자란 집 앞인데 오늘따라 낯설고 무섭다. 집 안에는 부모님과 동생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들어갈 수가 없다. 가족이 있는 곳까지 지척인데 천 리 길이라도 되는 것만 같다. 심하게 떨고 있는 k가 불쌍해서인지 갈수록 커지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 것인지, 돌연 자신이 입고 있던 초록색 체크무늬 점퍼를 벗어준다.    

 

 “고마워.”    

 

그제야 상대가 k의 눈에 들어온다. 사방이 하얀 눈밭에 달빛마저 환한 밤이다. 눈에 반사되어 도드라지게 창백한 얼굴을 한 그는 산적 두목의 생김새도 아니요 흉악한 범인의 꼴도 아니다. k보다 어려 보이는데 호리호리한 키에 의외로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다. 


 “착해 보이는데 왜 이런 일을 하지?”

 “돈이 없어서.”  

   

 무심한 듯 당연하다는 듯 마지못해 건조하게 내뱉는 궁색한 답변에 소름이 돋는다. 순간 찬 바람에 실려 오는 술 냄새가 k의 머리끝을 쭈뼛 솟게 만든다. 엄습하는 불안과 함께 밀려오는 두려움으로 k는 되레 정신이 또렷해짐을 느낀다. 멀리서 차가 연이어 들어온다. 극도로 긴장한 그가 다시 k의 정수리를 잡아채 눈 속에 처박고는 한참을 숨죽여 지켜본다. 차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안도하는 그에게 k가 계속해 말을 이어간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

“난 나쁜 짓도 안 하고 여태 착하게 살았다고.”

“그런데도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 거야.”

“...”

“너도 추울 텐데 옷 빌려줘서 고마워.”

“...”    

 

  k의 고분고분한 태도에 잠시 방심한 강도의 감시가 느슨해진다. 탈출할 기회를 엿보던 k가 잽싸게 외투를 벗어 던지고 집을 향해 뛴다.     


 ‘엄~마~~~’


 전력을 다해 뛰고 있다. 하지만 다급한 k의 마음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아랑곳하지 않는 둔한 몸짓이다.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팔과 다리가 눈길에 속력을 내지 못한다. 추위에 발이 얼어서인지 두려움에 몸이 굳었는지 마치 영화 속 장면의 주인공인 된 기분이다.   

  

‘이건 꿈인가?’

‘꿈에서도 이랬는데.’

‘야, 넌 이 상황에 왜 달리기까지 못 하는 거야?’

‘도대체 잘하는 게 뭐니?’  

   

위기의 순간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우습다는 생각이 드는 k다. 결국 강도로부터 채 몇 발자국을 벗어나지 못한다. 바로 k의 집 앞에서 강도가 머리채를 낚아채 그대로 끌고 간다. 


“내가 착해 보인다며? 응?”

“근데 왜 도망가?”

“그럼 이 상황에 너라면 안 그러겠냐?”     


 격분한 강도가 홱 돌아서더니 이번에는 그 자리에서 k의 목을 조른다. 이내 눈이 돌아간 강도의 눈빛은 살기마저 감돈다. 앳되고 순진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이미 악마나 다름없다.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못 하고 죽는 건가?’

‘나, 이거 너무 억울한데?’

‘왜 이렇게 힘이 없지?’

‘엄마가 먹으라는 고기도 좀 먹을걸.’     


  목에서 강도의 손을 떼려 안간힘을 쓰고 발버둥을 치는 k지만 역부족이다. 그 상황에서도 편식한 자신이 원망스럽고 힘을 쓰지 못하는 자신이 바보 같다. 액션배우처럼 강도를 멋지게 때려눕히지 못하는 연약함에 화가 난다. 입에서는 침이며 액체가 흘러내리더니 이젠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런데 k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 갑자기 꽁무니 빠지게 줄행랑을 치는 놈이다. k도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서 집으로 뛰어 들어간다. 살기 위한 몸부림을 친 k의 몰골은 그야말로 엉망인 채다. 헝클어진 머리칼은 한 움큼씩 빠졌고 충격으로 몸을 심하게 떠는 k를 보는 가족들은 너무 놀라 할 말을 잊었다.      


“내 이 자식을 때려 죽여버리고야 말 테다.”

“이게 뭔 일이래.”   

  

 아버지는 직감적으로 파자마 차림에 맨발로 삽을 들고 뛰쳐나가고, 중학생인 남동생도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온 동네에 불이 켜지고 강도를 찾아 나선 아버지가 한참을 눈밭을 헤매다 돌아와 놓쳤다며 분개한다.   

  

“왜 목을 조르다 말고 도망쳤을까?”

“내가 부르는 소리 들었어?”

“아니?”

“나 숨이 거의 넘어갈 뻔했거든?”

“내가 양치질한다고 문을 세게 차고 나갔어.”

“나도 오빠 따라서 문을 발로 뻥 차고 나갔는데?”    

 

 동생이 밖으로 나오면서 문을 걷어찼다. 연거푸 들린 두 차례의 소리가 강도의 간담을 써늘케 했음이다. 범행을 저지르고 있어 모든 감각이 예민해 있던 강도에게는 유난히 크게 들렸을 터다. 평화롭던 그 시각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음을 상기하니 k는 소름이 돋는다.


 겨우 잠을 청한 k가 텔레비전 소리에 눈을 뜬다. 

    

‘다음은 사건 사고 소식입니다. 어젯밤 늦은 시각 귀갓길 여성이 살해당했습니다. 피해자는 결혼을 앞두고 있던 예비 신부로 남자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강도를 만나 살해된 여성의 시신은 피해자의 집 근처 야산에 버려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k는 자신이 겪은 일보다도 뉴스 보도에 오히려 심한 충격을 받는다. 사건 장소가 바로 k의 집과는 강을 하나 사이에 두고 있다. 어쩌면 그 밤에 k가 똑같은 모습으로 죽을 수도 있었음이다.    

 

‘혹시 나 대신 그 여인이 죽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자가 분을 삭이지 못해 거기까지 건너가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    

 

모골이 송연해진 k의 심장이 빠르게 뛴다.      


소식을 전해 들은 홍삼촌이 집에 들렀다. 어려서부터 홍삼촌이라 부르는 사람은 k의 아버지에게는 대모 격인 마을 할머니의 아들이다. k 집 일이라면 뭐든 발 벗고 나서는 의리 있고 힘도 센 시골 한량이다.     

 

“내가 알아봐 줄까? 원하면 말해라.”

“괜찮아요. 돈도 얼마 안 되고.”

“수소문하면 다 알 수 있어.”

“아니에요. 머리카락만 빠지고 크게 다친 것도 아니니.”   

  

 혹시나 나쁜 일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k를 보는 조심스러운 시선들이다. 하필 칼을 쥔 손을 떠는 순진한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k는 일이 커지는 것을 피하고 싶다. 취중 잘못된 판단에 범죄자로 낙인이 찍혀 평생을 살아갈 강도의 앞날을 걱정했음인가? 아니면 그저 보복이 두려워서일까? 사건을 다시 떠올리기 싫은 k의 마음은 운수 나쁜 날 한낱 작은 일로 치부하여 잊고 싶은 것이다.  

   

 조용한 시골에서의 강도 사건은 딸부잣집 부모님에게는 노이로제가 되었다. 수상한 사람이 정류장에 서성인다는 정보로 딸의 늦은 귀가에는 늘 부모님이 번갈아 당번을 섰다. 언제든 범인에게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리고 6남매가 무사히 성장하며 사건은 그렇게 조용히 잊힌 줄 알았다. 그러나 단지 하나의 에피소드로 여기고 싶었던 사건은 의지와는 달리 k의 마음속 깊숙이 생채기를 남겼다. 

     

 그간 잊은 줄 알았던 사건은 이후 모양을 달리해 불쑥 괴롭힌다. 악몽에 시달리고 흐느끼면 짝이 토닥여 재운다. 몽유병인지 그도 아니면 어릴 적 충격을 받았는지를 심각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묻는다. 집안에서조차 가족을 보고 놀라는 나를 위로하고 안타까워하는 남편이다. 또한 흉악한 강도에게 분노를 드러내는 남편이 있음에 든든하다.     


 태중 아이도 열 달 내내 편히 지낼 수 없었나 보다. 숙면이 힘든 아들의 예민함에 당혹스럽다. 번데기처럼 이불을 둘둘 말고 잠을 자는 남편은 옆 사람 이불까지 빼앗는다. 아빠와 엄마의 잠버릇까지 꼭 닮은 아들을 보면 절로 한숨이 난다. 옆에 사람이 있어야 잠을 자는 아들과 잠귀가 유난히 밝은 배우자 때문에 남편까지 괴롭다. 머리만 대면 곤한 잠을 자던 남편이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를 닮는지 조금만 뒤척여도 바로 반응한다. 

     

 오늘도 우리 가족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시작된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데 전혀 반갑지 않은 꿈에서 네가 나오는구나!


“너, 참 잘 만났다. 오랜만이야.”

“정말 날 죽일 셈이었냐?”

“...”

“넌 발 뻗고 편한 잠을 자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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