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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tain가얏고 Dec 27. 2023

뽑을까 말까

 유난히 눈에 띄는 녀석이다. 쥔장도 모르게 어느 틈에 끼어들었는지, 한 자리 딱하니 차지하고 있다. 좀 당찬 구석도 있기는 한데 눈에 거슬린다. 막 갈아입고 나온 듯 옷 컬러가 특히 못마땅하다. 눈치껏 차려입고 나올 일이지 혼자만 튀는 엉뚱함은 남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오늘은 귀찮으니 대충 덮고 모른 척 지나갈까? 고민에 빠진다.    

 

요즘 들어 점점 휑해지는 주변머리가 걱정이다. 주위와 어울리지 않는 막 자라난 애매한 놈이다. 바쁜 아침 족집게를 들고 거울 앞에 섰다. 부러 이 시간대에만 눈에 띄는 교활한 놈이다.    


“아니지. 엉큼한 건 네 마음이겠지!” 

“...”

“감히 날 해치려고?”

“내가 이래 봬도 옷만 잘 입으면 쓸만한 놈인데?”

“아니야, 넌 너무 튀어. 보기 싫어.”

“과연 그럴까? 내가 없으면 허전할걸?”

“너 하나 없다고 큰일 나지 않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나 아픈 건 잠깐이다.”

“넌 이제 나이가 많아. 나라도 네 곁에 있지 않으면 안 될 거야. 그만 인정해. 날 뽑아내면 다시는 그 자리엔 아무도 오지 않아. 그걸 명심하라고!”    


해볼 테면 어디 해보라며 경고를 날리는 당돌함에 잠시 멈칫한다.     

 

 무탈하고 즐겁게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을 꿈꾼다. 그래서 더 나은 곳을 찾아 옮길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을 한다. 특히나 불황기에는 스펙이 좋지 않으면 취업도 힘들다. 겨우 들어간 직장에서는 혹여 상사의 눈 밖에 날까, 행여 힘든 업무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낙오자가 될까 불안하다. 눈치 없이 돋아난 새치처럼 내쳐지지 말라고 한다. 여기저기 직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이라며 외쳐 대는 잔소리도 난무한다. 살아남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스스로가 측은하다.    

 

 동료에게 씹히고 마음 상해 잠들지 못한다. 애꿎은 휴대폰만 들여다본다. 누구에게 이야기해야 마음이 풀릴까 전적으로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을 찾는다. 어제는 가십거리의 대상이었다가 공동의 적이 생기니 다시 한 편이 되어 뭉친다. 젊은이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애처롭다. 상사의 행동에 분개해 당장이라도 사직서를 집어 던지고 직장을 나오는 상상을 한다. 사표를 가슴에 품고 출근을 하지만 마주한 현실은, 오늘 하루만 참아볼까?    

 

 관리자는 또 어떤가? 이른바 ‘갑질’을 하는 관리자를 매스컴에서 자주 접하고는 손가락질을 해댄다.

 

 ‘돈이면 다야? 나쁜 놈! 인성이 바닥이네. 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야?’


 그런데 그 치사한 돈을 벌기 위해 아등바등 출근을 서두르고 있다. 헤어짐에 있어서 직장 상사가 들려준 마지막 말씀이다.


“나도 당신 눈치 봤다고!”

“...”    


‘뭐요? 내 눈치를 살폈다고? 설마, 본인 내키는 대로 막 하지 않았나?’    


가끔 내 감정이 표정에서 다 드러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상대에게 감정이 읽힌다는 건 하수 중의 하수다. 화가 나는데 어떻게 아닌 척 할 수가 있지? 난 그게 가능한 당신이 더 신기해. 이 엉큼한 인간아!    


 손자병법에서 자주 등장하는 계략은 상대를 속이는 게 기본이다. 상대를 감쪽같이 배신한 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뻔뻔함이 역사에는 수없이 많다. 사회도 성격만 다른 전쟁터와 다름없다. 그러면 내가 바뀌어야 하는 것인가? 겉과 속을 같게 하기보다는 어우러지게 하라. 내면만 열심히 닦은 사람은 세상 물정에 어두워서 망하고, 외면만 열심히 꾸민 사람은 올바른 도리에 무지하고 스스로 절제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망하고 만다. 공자는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 우스꽝스러운 사람이 되지 말고 두 가지가 모두 뒤처지지 않도록 힘쓰라고 경계했다.    

 

 나도 내 몸의 관리자! 그런데 내 하나뿐인 소중한 몸 관리는 소홀히 하면서 남이 날 소중히 대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다. 꼬박꼬박 세 끼니는 제대로 챙겨 먹고 있는지. 적절한 운동을 하고 있나? 적절한 수면과 스트레스엔 적절한 대처를 하고 있는가? 내 몸이 좋아하는 먹거리를 챙기고 있는가? 간사한 입맛의 꾐에 넘어가서 해로운 것만 집어넣어 간을 혹사하고 있지는 않은가? 


‘난 내 몸에 갑질을 하고 있는 어리석은 내 몸 관리자구나!’

‘철저한 관리는 원래 어려운 거야.’


내일부터는 제대로 내 몸을 관리하리라 마음먹는다.    


고개를 드니 여전히 신경에 거슬리는 집요한 놈이다. 


‘그래 난 이제 나이가 들었고 앞으로도 더 나이가 들겠지.’    


“계속 고집 피울래?”

“기어코 날 제거해야겠어?”

“네 말이 옳아. 하지만 오늘만큼은 어려 보이고 싶다. 지금이 남은 생에 최고로 젊은 날이니까.”    


그래서 내려놓았던 족집게를 다시 들었다. 관리 차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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