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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tain가얏고 Dec 28. 2023

풍수인테리어라고요?

‘나 때문에 아들이 좋은 학교를 못가면 안되지.’

별안간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맨발에 잠옷 바람으로 신발장에 있는 연장함을 뒤졌다. 

“사 살려주세요.” 

“너한텐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아들이 우선이다.”

“절 예뻐하셨잖아요.”

“아들을 생각하는 엄마의 모정을 이해하렴. 엄마의 자식 사랑은 눈에 뵈는 게 없단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무엇인가에라도 홀린 듯 눈을 희번덕거린다. 베란다 창가에 잘 자라고 있는 호야를 뿌리째 뽑았다. 모종삽을 들고 두리번거리다가 눈에 띈 화분을 향해 다가갔다. 언제부터였는지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다. 말라비틀어진 나무를 뽑은 후 흙까지 쓰레기봉투에 퍼 담았다. 그런데 이번엔 깨진 화분이 보인다. 망치까지 가져 와 마저 깼다. 두꺼운 종이에 꼼꼼히 싼 후 버리니 그제야 안심이다. 깨끗하게 정리된 베란다가 눈에 들어 온다. 휴우~  

  

 아래로 늘어져 자라는 식물은 자녀 합격의 기운을 떨어뜨린다고요? 이미 말라버린 화분을 방치하면 안 된다. 빈 화분을 두면 안 된다. 들어오는 입구에 물건을 적재해 두면 안 된다는 등등. 아들의 고등학교 시절 갑자기 눈에 띈 영상들이다. 화초 키우기가 취미인 직장 상사가 분양해 준 식물 ‘호야’는 키우기가 쉽고 생명력도 강하다. 집에 화분이라고 해야 몇 안 되는데 그마저도 다 죽고 없어서 빈 화분에 심어볼까 해서 얻어왔다. 그런데 의외로 탐스럽게 자라서 내심 뿌듯한 마음이었는데 그걸 내 손으로 걷어 냈다.    

 

 꽃나무 앞에서 잘 자라라고 노래까지 불러주는 친정엄마다. 그런데 그 딸은 근거도 없는 말에 미혹되어 순식간에 생명을 없애버렸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도 있는 걸 보면 마음 한구석에 죄책감마저 드는 밤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B.파스칼이 인간을 비유하여 한 말이 떠오른다. 그의 사상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팡세》의 서두에서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인간은 광활한 대자연 가운데 '한 개의 갈대'와 같이 가녀린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하는 데 따라서는 이 우주를 끌어안을 수도 있는 포용력 또한 지니고 있다. '생각하는 갈대'에는 위대함과 비참함을 함께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모순되는 인간의 존재와 그 기저에서 싹트는 불안을 상징하는 생각하는 갈대! 나를 비유해 볼까? 나도 인간이자 여자의 마음 그리고 난 엄마의 마음이다. 너무 나아갔나? 인간의 심리는 참으로 간사하기 짝이 없다. 시시각각 바뀌는 내 마음 나도 모른다. 여기에는 여자고 남자고 예외가 없다. 난 보통의 평범한 인간이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게’라는 표현을 참 많이들 사용한다. 나 또한 내 마음을 모른다. 좀 전까지만 해도 이랬다가 금세 마음은 또 다른 모습을 하고 나타나 나를 괴롭히기도 하고 나를 기쁘게도 한다. 이처럼 간사한 게 또 있을까 싶다. 늘 같은 마음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물컵에 가득 찬 물을 손바닥에 올리고 한 방울도 쏟지 않고 옮길 수 있을 정도의 평정심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생을 살면서 자의든 타의든 위기의 순간에 행동함에 있어 흔들림 없는 확고한 마음이 부럽다. 때로는 고집이기도 하고 아집으로 불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본인에 대한 신념이 있다는 것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잘못된 신념에 대한 고집불통만큼 무서운 게 없다. 삶을 대하는 유연한 태도도 때로는 필요하다. 그런 걸 처세라고 부른다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받아들여 하나로 합쳐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어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네 인생도 이렇게 도도히 흘러가야 함이 옳을까? 시간은 이 강물과 같아서 밤이나 낮이나 멈추지 않은 채 흐른다. 우리가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잠시라도 멈추고 기다려 주는 아량은 터럭만큼도 없다. 이러한 시간 앞에서 다스려야 할 것은 내 마음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시간은 더디게도 급박하게도 흐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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