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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tain가얏고 Dec 28. 2023

내 남자의 또 다른 오리발

“이 시간에 대체 어딜 갔어요?”

 “수영하러 왔어요.”

 “코로나로 수영장 문 닫았는데?”

 “바다 수영!”

 “인증샷 보내시오.”


 잠시 후에 도착한 사진은 바닷가 입수 직전의 모습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수영장 이용이 힘들어졌다. 남편은 수영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건강 때문에라도 꾸준한 운동이 필요하다. 취미로 시작한 운동이 가히 선수급 수준이다. 쉰을 넘기고도 아직 군살 하나 없다.     

 

 짝이 다시 짐을 꾸리고 있다. 이번에는 일행이 없다며 같이 가자고 청한다. 나름 바다 수영의 성지로 알려진 경기도 안산의 ‘구봉도’는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이다. 곳곳에 수영 동호회 회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 준비운동에 한창이다. 휴일 새벽부터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남편 같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놀랍다. 이 중에 나만 게으르고 무기력증에 빠진 부류인 것 같아 주눅이 든다.   

   

 안전 장비를 꼼꼼히 체크하고 챙긴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는 모습에 믿음이 간다. 바다는 예상 밖의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라 무섭다. 보트라도 있어서 안전요원처럼 곁을 지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배를 갖고 싶다는 오랜 욕망이 꿈틀댄다. 굳이 사야 할 이유를 자꾸만 들이민다. 남편은 완영하고 나올 도착지를 정하고 물에 들어간다. 카메라 렌즈 너머 짝의 모습이 가물가물 멀어진다.    

 

 한눈을 판 사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거리를 가늠할 수 없게 된 눈이 문제다. 망원경도 고사양 고배율로 필요하다. 끝없는 물욕이 다시금 올라온다. 뒤늦게 출발한 그룹도 바닷물에 몸을 맡긴다. 다들 제집 안방인 양 편안해 보이는데, 나아감에 있어서는 거침이 없다. 너른 바다 어딘가에 있을 짝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물 위를 한가로이 떠다니는 갈매기가 눈에 들어온다. 인간사 탐욕은 다 부질없다는 듯 크게 출렁대는 파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초가삼간 자연인을 꿈꾸는 게 맞느냐?’        

                   

 어찌 그리 바라는 것이 많은지 되묻는 것만 같다.     


 자리를 옮겨 반대편 약속 장소로 향했다. 출발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동틀 녘 파도 소리만이 들리는 한적한 바닷가다. 조용하기 이를 데 없는 적막감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사색에 잠기게 한다. 도심 가까이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한참을 서성여도 바다 건너에는 사람 그림자조차 없다. 바닷가 아낙의 절절한 기다림의 심정을 어렴풋이 느낀다.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 아래 먹이를 찾는 갈매기 떼만 어지러이 날고 있다. 초조한 내 마음과 달리 눈앞에서 유유자적 활공한다. 도착 지점을 잘못 찾은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안쪽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간다. 한두 명씩 물 밖으로 올라오는 걸 보니 약속한 곳이 맞는 것 같다. 짝을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는데 착각임을 깨닫는다. 비슷한 슈트와 형형색색의 수모와 장비들이다. 특히나 물속에서 구분하기란 당최 어렵다.      


 날렵한 몸, 낯익은 수모와 오리발이다. 한참을 주시하다가 가까이 다가간다. 물 밖으로 나온 사람은 나이 지긋한 여자다. 민망함에 돌아서는데 드디어 짝의 등장이다. 반가운 마음에 태블릿 녹화 버튼을 눌렀다. 어라,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엉뚱한 사람이다. 당혹스러움에 영상부터 삭제한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남자가 빤히 쳐다본다. 도망치듯 황망히 자리를 뜬다. 좀처럼 물에서 나오지 않는 짝이 걱정이다. 계속된 헛발질에 지쳐갈 즈음 핸드폰이 울린다.      


“부인, 어디야?”

“도착했어요?”

“응.”

“대체 어디로 나왔어요? 이쪽저쪽 계속 왔다 갔다 했잖아요.”


 뭍에서 다시 만나니 안도감에 반갑다. 하지만 입에서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 한차례 수영을 마친 사람들 뒤로 이번엔 다른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이 몰려든다. 구봉도는 또다시 활기를 띤다.   

   

 며칠 후 도착한 택배 상자에서 나온 건 남편의 또 다른 오리발이다. 추진력이 좋다는 말에 혹해서 주문했다며 해맑게 웃는다. 어깨가 말썽이어도 꾸준한 근력운동으로 수영을 포기할 줄 모른다. 젊은 청년과 나란히 운동을 즐기는 남자다. 하나둘 수영 도구와 운동기구를 늘려가니 집이 좁아진다.      


 살면서 서로에게 실망할 때도 있고 화날 때도 있다. 이제는 서로 사랑하기만도 모자란 시간임을 깨닫는 걸 보면 그만큼 나이가 들었음이다. 희끗희끗 늘어가는 짝의 새치를 보며 다짐한다.    

 

 ‘앞으로 좋은 말만 하고 긍정적으로 살자.’ 


분명 어제까진 그랬다. 새끼손가락까지 걸었더랬다.      


“어디야?”

“한강에 왔어요.”

“인증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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