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네 군밤
(흥부네 군밤)
어머니가 바깥 솥에 쌀을 씻어 안치고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이글거리는 불길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광으로 가더니 가을날 저장해 둔 밤을 꺼내왔다. 빛깔 좋고 탱글탱글한 것이 날것인 채로도 맛 좋을 것이다. 아버지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실한 몸체에 작은 칼집을 내기 시작했다.
“아빠, 왜 그렇게 해?”
“그냥 넣으면 터진다.”
아버지는 활활 타는 장작불 가장자리를 부지깽이로 헤집어 알밤을 휙 던져 넣고 불씨가 있는 재로 덮었다. 잠자코 지켜보던 미진이가 아버지 곁에 쪼그리더니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 ‘뻥’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회백색 재가 튀어 올라 사방으로 퍼졌다.
“아이코, 깜짝이야.”
분명 칼집을 냈는데도 알밤들은 야단법석이다. 어떤 건 대담하게 또 다른 건 피식하고 바람 새는 소심한 소리를 낸다. 금세 양 볼이 볼그족족해지고 무릎이 화끈거리지만 자리를 뜨지 않는다.
얼마쯤 지났을까 아궁이를 뒤적여 밤을 꺼낸 아버지는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밤껍데기를 까기 시작했다. 너덜너덜해진 껍질을 벗고난 알밤은 윤기 나는 구릿빛의 먹음직스러운 몸통을 드러냈다. 아버지는 행여 딸아이의 입천장을 델까 호호 불어 쏙 넣어 준다. 어느새 동생들까지 쪼르르 달려와 아버지 주위를 둘러섰다. 서로 먼저 달라고 입을 벌린 채 아버지의 까매진 손끝을 바라다보고 있다.
“아빠, 나도.”
“나도.”
뜨거움을 참으며 군밤 껍질을 벗기는 딸부자 아버지의 손길이 바쁘다.
“아이고, 꼭 흥부 새끼들 같네.”
어머니가 나무 주걱으로 밥을 푸다 말고 웃음을 터뜨린다. 아버지도 어머니를 따라 웃고 아이들은 아버지 따라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