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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별을 닮은 아이)

첫눈

by captain가얏고

(첫눈)


누렇게 색이 바랜 창호지를 비집고 드나드는 찬바람에 코끝이 시리다. 새우잠을 자는 아이가 목을 잔뜩 옴츠려 보지만 정수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고약한 바람이다. 여느 때와 다른 서늘한 기운에 실눈을 뜨고 주위를 살핀다. 얼어 뻑뻑해진 창문을 힘주어 열고 밖을 내다보더니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른 일어나 봐.”

“눈이 왔어.”


길 위에도 건너편 이장님 댁 지붕에도 소담스레 뿌려진 새하얀 눈이 아침 햇살에 반짝인다. 찬 공기가 훅하고 얼굴을 덮치니 정신이 번쩍 난다. 첫눈 소식에 마음이 들뜬 동생들은 나갈 채비로 부산스럽다.


갈색 털이 달린 새까만 신을 신었다. 수북이 쌓인 눈을 밟으니 고무 재질의 신발이 쏙 들어가며 소리를 낸다.

“뽀드득”

“왜 자꾸 따라오지?”

“뽀드득”

“같이 가자.”

“뽀드득.”

돌아다보니 올망졸망 줄줄이 발자국이 났다. 기분 좋은 아이가 요리조리 새로운 소리를 만들며 눈밭에 모양을 내느라 바쁘다.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함박눈이 부드럽게 잘 뭉쳐진다. 눈덩이를 굴리면서 새로운 길을 내는 동생, 눈을 퍼서 몸체에 붙이는 동생, 완성된 눈사람의 표정은 하나같이 우스꽝스럽다. 퍽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장난꾸러기 남동생이 혀를 쑥 내밀고는 줄행랑이다. 눈싸움에 신난 동생들로 앞마당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산 아래 우물 옆 비탈진 곳이면 눈썰매를 타기에 적당하다. 겨울이면 키가 한 뼘씩 자라는 동생들은 따라쟁이다. 언니 따라 비료 포대를 꺼내어 들고 안을 푹신하게 채워 넣었다.


동생보다 키가 큰 미진이는 한참 위쪽으로 올라갔다.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오다가 끝에서 그만 벌러덩 넘어졌다. 동생들이 배꼽을 잡고 웃는데 강아지까지 깡충거린다.


언 손을 녹이는 막내의 통통한 볼이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개졌다. 입김을 부는 동생의 입에서 연신 하얀 김이 뿜어져 나오고, 우뚝 솟은 굴뚝은 희뿌연 숨을 길게 내쉰다.


“아침 먹어라.”


산 아래 외딴집은 순식간에 아이들을 집어삼키고 몸을 웅크렸다. 한숨 쉬고 있던 함박눈이 다시금 지붕으로 살금살금 내려앉고, 남겨진 눈사람은 아이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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