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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별을 닮은 아이)

얼음 썰매

by captain가얏고

(얼음 썰매)


“미진아, 밖에 좀 나와봐.”

“왜?”


잔뜩 뾰로통한 표정의 아이가 마지못해 방문을 열었다. 빼꼼하니 살짝 얼굴만 내미는데 영 뚱한 표정이다. 줄을 끊고 날아간 방패연으로 상한 마음이 채 풀리지 않았다.


“어? 썰매잖아?”


어느 틈에 멋진 썰매가 만들어졌다. 손재주 좋고 부지런한 아버지는 뚝딱뚝딱 신기한 물건들을 만들어 낸다. 아버지의 망치질 몇 번에 탄생한 얼음 썰매다.


아버지가 자투리 나무를 이어 붙여 널찍한 상판을 만들었다. 보통은 나무판자 양 옆으로 각목을 대고 그 아래 철사 같은 쇠붙이를 대서 날을 만드는데 이번에는 무언가 다르다. 상판 아래 양쪽 다리로 나무 대신 길쭉하고 큼지막한 쇠붙이가 붙었다.


다음으로 두 개의 닮은 꼴 나무를 매끈하게 깎았다. 막대 맨 위로는 잡기 편하도록 한일자 모양의 손잡이를 만들었고 막대기 끝에는 날카로운 쇠꼬챙이를 박아 넣었다.


얼핏 보아도 이전 것과는 확연하게 차원이 다른 멋진 썰매가 만들어졌다. 새 썰매를 확인하고 헤벌쭉 입이 귀까지 벌어졌다. 딸아이의 환한 얼굴에 아버지도 그제야 웃음을 머금는다.


“아빠 최고!”


순식간에 문을 박차듯 하고 집을 나섰다. 의기양양 썰매를 들고 집 앞의 논으로 내달렸다. 때마침 계속된 한파에 고였던 논바닥 물이 꽁꽁 얼었다. 햇볕에도 녹지 않은 눈이 얼음 위로 하얗게 굳어있다.


얼음이 두텁고 평평한 지점에 썰매를 내려놓고는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았다. 설매채를 얼음에 내리꽂으니 썰매가 쓰윽 미끄러져 나아간다. 작대기에 온 힘을 실어 얼음을 찍으니 가속이 붙어 빠르다. 군데군데 잘려나간 벼 밑동의 방해에도 날이 잔뜩 선 썰매가 거침이 없다.


‘아빠는 내 맘을 어떻게 알았지?’


쌩쌩 바람을 가르며 너른 논바닥을 달린다. 이미 차가운 칼바람 따위는 아랑곳없이 얼음을 지치는 아이다. 혼자서 신바람이 났는데 어느 틈엔지 쪼르르 동생들이 따라 나왔다.


“언니, 나 태워주라.”

“나도, 나도.”


단숨에 논으로 내려와 줄줄이 썰매 뒤를 따른다. 한겨울 강추위에 딸부잣집 육 남매가 누비는 텃논이 모처럼 활기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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